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발전소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발전소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4기 배장민
[전력의 특성, 수요에 맞춘 공급]
전력의 가장 큰 특징은 ‘수요에 맞춘 공급’이다. 전기를 생산한 만큼 사용자가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필요한 만큼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의 특성 때문에 특정 시간대에 사용자가 얼마만큼의 전기를 사용할지 예측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주파수(frequency)가 동일하게 유지돼 전력계통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60Hz의 주파수를 사용하며, 이는 발전기가 1초에 60번 회전하면서 전기를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전선을 타고 사용자에게 공급된다. 사용자 측에서 주파수가 높아지거나 떨어지게 되면 발전단 측에서도 이에 맞게 주파수를 조절해야 계통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한 지역의 주파수가 흔들린다고 해서 규격화된 주파수를 임의로 조절할 수 없으며, 발전기 역시 기계이므로 운전 가능한 범위가 존재한다. 따라서 예상한 전력수요보다 실제 전력사용량이 많아지게 되면 주파수가 흔들리게 되고, 이는 송전선 탈락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송전선이 탈락하면 그물망처럼 촘촘히 설계된 전국의 송전망이 순식간에 끊어지게 되고, 이는 대정전(블랙아웃)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수요 예측을 통해 주파수를 통일하는 것은 전력계통 운영에서 중요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력거래소(KPX)가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전력시장을 운영한다.
[자료 1. 전력거래소에서 발표하는 최대부하전망 ]
출처 : 전력거래소
[우리나라의 송전계통 실정]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전선을 타고 사용자에게 전달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봇대에 걸쳐진 선들을 비롯해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보게 되는 큰 철탑들과 선들이 바로 송전선이다. 다만, 여기서 다루는 송전선은 154kV~765kV 수준에 이르는 전압을 지탱할 수 있는 송전선을 의미한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가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전봇대에 있는 송전선이 아니라, 고속도로나 벌판, 산에서 볼 수 있는 큰 철탑에 있는 송전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송전계통은 한국전쟁 휴전 이후인 1960년대 이후부터 발전됐다.
[자료 2. 765kV 신태백 송전선로 ]
출처 : 쌍용건설
[자료 3.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송전계통 구성 ]
출처 : 국내 전력계통 현황과 전망(이성규), 전기의 세계, 2014년 10월 호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의 송전계통은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성장했다. 최근에는 동해안에서 출발하는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초고압 직류송전)선로가 지어지고 있는 등 현재까지도 송전계통이 확장되고 있다. 다만, 유지 및 보수의 문제가 있다. 송전선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리적, 화학적으로 노후화가 진행된다. 따라서 한국전력은 전국에 있는 송전망을 관리하고 필요한 경우 교체, 보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송전망을 전압에 맞춰 보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765kV의 경우 초고압에 해당되는데, 처음 송전망을 계획할 때는 생각하지 못한 초고압 송전을 하며 높은 전압을 견딜 수 있는 송전망을 새로 계획해야 했다. 지리적으로도 산이 많고 석탄화력 및 원자력발전이 기저전원인 우리나라의 경우 바닷가에서부터 내륙까지 송전선을 잇는 것은 철탑 공사 및 지역주민과의 갈등 등 제약조건이 많았다. 더군다나 송전사업자인 한국전력의 부채로 인해 송전계통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 한국전력의 민영화와 관련해 송전분야에서 부분적인 민영화를 시행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 위의 배경 때문이다.
[생산한 전기를 전달할 수 없다 : 송전용량의 제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정부 차원에서도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전기를 우선 구매하는 방안을 시행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신재생에너지가 전력계통으로 유입되면서 석탄화력, 원자력발전 등 기존 발전원들의 출력이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제주도나 전라남도와 같이 신재생에너지원이 풍부한 지역에서 주로 발생했다. 하지만, 강원도의 상황은 뉴스에서 말하는 출력제한과는 다른 형태이다. 이는 두 가지를 근거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는 기존 에너지 발전원인 석탄화력발전소끼리의 출력제한이 발생한 것이다. 제주나 전남과 같은 경우는 신재생에너지의 예측변동성으로 인한 신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의 출력제한이 주로 발생했다. 반면, 강원도의 경우 신재생에너지의 출력제한이 아닌 석탄화력발전소 간의 출력제한이다. 둘째는 발전사와 수용자가 모두 전기에너지를 원하지만, 이를 이을 송전선의 용량 한계로 인한 출력제한인 점이다. 강원 지역의 송전설비 규모는 11GW의 규모이다. 하지만, 강원 지역 발전설비 규모는 약 14.5GW로, 설령 모든 발전소에서 최대의 출력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송전계통이 버틸 수 없다. 올해 1.4GW급의 신한울 원전 2호기가 상업운전되고 다른 석탄화력발전소까지 세워지면 총 설비용량이 17~18GW 규모로 커진다. 발전기 역시 기계인지라 유지 및 보수 그리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쉬지 않고 100%의 설비용량으로만 운전할 수 없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발전용량을 제외하고도 풍력발전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원의 유입 등 송전계통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규모의 발전용량이 강원지역에 들어선다.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어도 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몇몇 발전기는 가동을 중지해야한다. 그리고 중지하는 기준은 당연히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자료 3. 2024.04.05부터 상업운전이 시작된 신한울 2호기(우) 사진]
출처 : 한국수력원자력 공식블로그
더 큰 문제는 원자력발전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현재까지는 석탄화력발전사의 가격 경쟁으로, 가격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낼 수 없었지만 생산단가가 약 3배 정도 차이 나는 원자력발전소와의 경쟁에서 석탄화력발전소는 질 수밖에 없다. 2011년 대규모 순환정전 이후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지면서 전력수급계획을 작성하고 시행했지만, 발전량의 증대에 비해 송전규모 확장이 더디어 민간기업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신한울 원전 2호기가 2024년 4월 5일부로 상업운전을 진행 중이며, 원전 운전 이후의 석탄화력발전소 적자규모 폭의 변동을 바라보면 이 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소를 지어놨지만,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발전소가 돼버린 것이다.
[전력계통, 나무가 아닌 숲을 보아야 할 때]
전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져서 공장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데까지 물리적으로 연결돼있다. 그리고 그 물리적인 연결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복잡한 비선형적(non-linear)연결이다. 전기에너지는 반짝 관심있고 사라질 에너지가 아니며, 현재는 물론 미래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도 꼭 필요한 에너지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효율성과 경제성을 모두 챙기려면 이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할 때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부터 전압을 조정해 최소한의 손실로 전달하는 송전과정, 그리고 각 회사나 공장, 가정에 공급하게 하는 배전 과정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3가지의 요소가 독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의 흐름이 에너지의 '발전'과정에 치우쳐있다고 보이면, 이와 동시에 효율적인 '송전', 그리고 안전한 '배전'까지도 나아가야 향후 우리나라의 전력산업과 기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쪽으로는 횡단할 수 없는 섬과 같은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는 다른 상황임을 인지하고, 우리나라의 특징에 맞는 송전계통을 그려야 할 때가 아닐까? 한국전력을 비롯한 전력산업을 책임지는 정부와 기업들은 '발전할 수 없는 발전기'의 의미를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전력계통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Watts Next? 한전 민영화 찾아올", 24기 변지원,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341
2. "출력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순 없을까?", 23기 김용대, 24기 배장민, 이우진,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236
참고문헌
[우리나라의 송전계통 실정]
1) 이성규, " 국내 전력계통 현황 및 전망 ", 전기저널, 454호, 42-47쪽, 2014.10
[생산한 전기를 전달할 수 없다 : 송전용량의 제한]
1) 이성규, " 국내 전력계통 현황 및 전망 ", 전기저널, 454호, 42-47쪽, 2014.10
2) 윤대원, " 송전제약에 고통받는 강원지역 발전소…연말부터 더 악화된다", 전기신문, 2023.07.10,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2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