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멈춘다, 현실이 된 '투모로우'
바다가 멈춘다, 현실이 된 '투모로우'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6기 신혜진
'투모로우'가 현실이 된다면?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재난 영화다. 영화에서 기후학자 잭 홀 박사는 지구온난화로 남·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해류 흐름에 변화가 생기고, 이로 인해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빙하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동료들로부터 비웃음만 살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된다. 미국 뉴욕에서 이상 난기류가 발생하고, 일본에서는 대형 우박이 내리는 등 북반구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해양 온도는 13°C나 떨어진 상태였고, 잭과 미국 백악관이 사태에 대처하는 것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이다.
과학자들은 ‘투모로우’와 같은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44명의 기후학자는 10월 19일 폐막한 ‘2024 북극서클 총회’에서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류(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 AMOC)의 둔화를 막기 위한 긴급 조치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AMOC가 붕괴될 경우 지구의 열 교환 기능이 약화되어 북유럽은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추워지고, 대서양 연안의 해수면이 크게 상승하며, 열대 몬순 기후가 지금보다 남쪽으로 이동하는 등 다양한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자료 1. 영화 '투모로우' 스틸]
출처 : 네이버 시리즈온
지구의 열전달 시스템: 해수의 순환
[자료 2. 열염순환]
출처: 위키백과
해수의 순환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대기 대순환에 의해 발생하는 표층순환(表層循環, surface circulation)으로,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넓고 느린 표층수의 흐름을 말한다. 표층순환은 순환 과정에서 지구 전체의 온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바다 깊은 곳에서 밀도차에 의해 발생하는 열염순환(熱鹽循環, thermohaline circulation)이다. 극지방에서 해빙이 형성될 때, 염분을 배제하고 물만 얼기 때문에 해수의 염도가 높아져 밀도가 커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밀도 해수는 아래로 가라앉아 적도 방향으로 흐르고, 이 물은 다시 데워져 열대 바다 표층에서 극지방으로 상승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열염순환의 대표적인 예는 남반구의 남극 역전 순환과 북반구의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AMOC)이다.
열염순환은 해수 순환 과정에서 열과 탄소,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하여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AMOC의 주요 기류인 멕시코 만류는 멕시코만의 따뜻한 해수를 대서양으로 전달하는 강한 해류로, 평균 시속 6.4km로 초당 약 40억 세제곱피트의 물을 운반한다. 이는 전 세계의 모든 강이 운반하는 양보다 많은 양으로, 지구 에너지 시스템에서 AMOC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AMOC는 난류를 북쪽으로, 한류를 남쪽으로 이동시키며 열전달의 원동력 역할을 한다. 또한 한류가 심해에 가라앉을 때 바다에 용해된 이산화탄소도 함께 가두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 이는 지구의 평균 기온을 유지하는 것을 돕고, 온난화 속도를 늦추는 데도 이바지한다.
AMOC의 붕괴: 빙하기의 시작
지구의 열평형에 있어 AOMC가 필수인 만큼, AOMC가 멈추었을 때 발생할 영향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한 영화 ‘투모로우’ 또한 AMOC가 붕괴의 증거를 여러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아래 장면은 그린란드 지역의 해수 온도가 급격히 낮아진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린란드 해역에서 심해로 가라앉는 해류는 대서양에서 고위도로 올라오는 멕시코 만류를 이끈다. 따라서 그린란드 해역의 이상 저온 현상은 대서양에서 그린란드로 올라오는 멕시코 만류의 흐름이 약해진 것을 의미한다.
[자료 3. '투모로우' 속 해상 부이 모니터링 시스템]
출처: 영화 '투모로우'
지구온난화로 인해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며 담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서 그린란드 인근 해역의 염분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해수 밀도도 감소하게 된다. 밀도가 작아진 해수는 심해로 가라앉을 수 없으므로, 열염순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 AMOC가 멈춘 것이다.
AMOC 붕괴 시 더 이상 저위도에서 고위도로 열을 수송할 수 없게 되면서, 저위도와 고위도 지역의 온도 차가 극심해진다. 따라서 저위도의 바다는 계속 뜨거워져 초대형 태풍이 발생하며, 중위도와 고위도는 열을 전달받지 못해 기온이 급격하게 하강한다. 특히 한류의 영향을 받는 지역은 기온 하강이 더욱 극심하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영화에서 캐나다와 미국 북부 지역이 빠르게 빙하기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자료 4. '투모로우' 속 레이더 화면]
출처: 영화 '투모로우'
1만 2800년 전은 실제로 AMOC의 마지막 붕괴가 일어난 시기이다.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 혹은 소빙하기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는 AMOC의 붕괴로 해류순환이 멈추며 나타났다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지구의 온도가 점진적으로 상승하며 북아메리카 대륙의 빙하가 천천히 녹아내렸고, 이 담수는 얼음 둑 뒤에 갇혀 있다가 둑이 터질 때 대서양으로 대량 유입됐다. 밀도가 낮은 담수의 유입으로 북대서양 지역의 열염순환이 중단되면서 AMOC가 사라졌고, 북대서양 지역에 빙하기가 도래했다. 당시 노르웨이의 기온은 지금보다 7~9℃ 정도 낮았으며, 남유럽 또한 빙하기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AMOC는 또다시 멈출까?
지구의 온도 상승이 AMOC의 붕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오늘날 지구온난화 속에서 AMOC는 안전할까? IPCC는 2023년 6차 보고서에서 AMOC가 이미 느려지기 시작했으나, 21세기 중에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이는 2004년 이후의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결과이다.
그러나 2023년 7월, 덴마크 코펜하겐대 페테르·수잔네 디틀레우센 교수 연구팀은 1870년부터 2020년까지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와 해류 흐름을 관측한 결과, AMOC가 2095년 이전에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해수 순환은 지난 150년 동안 이미 불안정해져 왔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극지방의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의 염도가 낮아졌고, 고위도 지역에서 해수의 침강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시, 지금부터 2095년 사이, 빠르면 2025년에 붕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해당 연구는 해수 온도를 통해 해류 속도를 예측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가정과 미지의 변수가 많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AMOC 연구는 현재 관측 데이터가 부족할뿐더러, 연구 모델링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AMOC 붕괴에는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입장이다. 2021년,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otsdam Institute for Climate Impact Research)는 AMOC가 붕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며, 지난 150년간의 온도, 염분 등 8개의 지표를 통해 멕시코 만류와 AMOC가 안정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 이보다 앞선 2020년,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과 위트레흐트 대학 연구팀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북대서양 해류의 순환 속도가 20세기 중반에 비해 15%가량 느려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연구는 AMOC가 완전히 소멸된다고 결론짓지는 않았지만, 향후 100년 이내에 일시적으로 멈출 가능성도 제기한 바 있다.
기후시스템의 경고: 우리가 해야 할 선택
AMOC의 붕괴 시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AMOC의 붕괴가 우리의 생각보다 머지않은 미래인 것은 확실하다.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 또한 변함없는 사실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인간 행동이 아니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AMOC가 언제 무너지느냐가 아닌, 지구온난화의 완화와 기후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즉각적인 대응이다. 탄소 배출량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등의 노력을 통해 기후 위기의 대응책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지구 마감 4년 264일 전! 이제는 진짜 위기다", 25기 노정연,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623
2. "우리는 기후변화에 속고 있을까?", 24기 이지혜, 25기 송현승, 이예영, 26기 이서진,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533
참고문헌
['투모로우'가 현실이 된다면?]
1) 윤원섭, "세계 기후학자 44명 “대서양 해류 ‘붕괴’ 대책 마련 필요”", greenium, 2024.10.23, https://greenium.kr/news/58386/
2) 이정호, "“대서양 해류 붕괴 대책 세워라”…전 세계 기후학자 44명 공개서한", 경향신문, 2024.10.23, https://www.khan.co.kr/environment/climate/article/202410231531001
[지구의 열전달 시스템: 해수의 순환]
1) 권예슬, "빙하기 다룬 재난영화 ‘투모로우’, 사실이었네", 동아사이언스, 2015.10.12,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8340
2) "심층순환", 지구과학사전, 2009.08.30,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9933&cid=60248&categoryId=60248
[AOMC의 붕괴: 빙하기의 시작]
1) 김기봉, "[날씨학개론] 영화 '투모로우' 현실화? …AMOC·멕시코만류 붕괴", YTN 사이언스, 2023.08.22, https://science.ytn.co.kr/program/view.php?mcd=0082&key=202308221558487632
2) 박은하, "해수 순환 붕괴 임박…영화 ‘투모로우’의 빙하기 경고장 떴다", 경향신문, 2023.07.26, https://www.khan.co.kr/environment/climate/article/202307261643001
2) "영거 드라이아스", 기상학백과, n.d.,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02223&cid=64656&categoryId=64656
3) 유성운, "[유성운의 기후와 문화 그리고 작품을 찾아서(15)] 영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북대서양 해류와 빙하기 문제", 월간중앙, 2024.10.25, https://www.m-joong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338439
4) Ditlevsen, P., Ditlevsen, S, "Warning of a forthcoming collapse of the 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 Nature Communications, 14, 4254, 2023.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