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산업계의 탄소 감축 압박 역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금까지 탄소중립 논의는 주로 화석연료 발전이나 자동차 배출가스,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₂)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교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불화온실가스(F-gases)”가 새로운 핵심 감축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F-gas는 냉장고와 에어컨에 사용되는 냉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 사용되는 특수가스 등을 포함한다. 과거에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CFCs)의 대체재로 주목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일부 물질이 이산화탄소보다 수천 배에서 수만 배 이상 강한 온실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냉동·공조 산업 확대와 AI·데이터센터·반도체 산업 성장으로 F-gas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제사회는 이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료 1. EU-Korea 불화온실가스(F-gas)감축 및 관리 방안 세미나]
출처 : ⓒ27기 김주희
최근 3월 25일에 진행된 EU-한국 F-gas 감축 세미나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과 한국의 정책 담당자, 산업계 관계자, 기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미나에서는 냉매 전주기 관리, 재생냉매 활성화, 산업계의 현실적인 부담, 반도체 공정 대체가스 개발, 국제 협력 방향 등이 폭넓게 논의됐다.
냉매가 왜 기후위기의 핵심 문제가 되었나
냉매는 냉장고, 에어컨, 냉동창고, 히트펌프 등 열을 이동시키는 거의 모든 설비에 사용된다. 냉매 자체는 일반적으로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 순환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제품 노후화, 유지보수 미흡, 폐기 과정 등에서 냉매가 대기 중으로 누출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냉매 계열인 HFC(Hydrofluorocarbon)는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몬트리올 의정서 이후 CFC 대체 물질로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HFC는 매우 높은 지구온난화지수(GWP)를 가진다. 일부 냉매는 이산화탄소 대비 수천 배 이상의 온난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미나 발표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는 매년 약 2만7000톤의 HFC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중 약 70%가 냉매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F-gas 배출량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 수준까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AI 산업 성장과 데이터센터 확대는 냉각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며, 동시에 막대한 열을 발생시킨다.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냉각 시스템이 필수적이며, 결과적으로 냉매 사용량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즉, 디지털 산업 성장과 기후위기 대응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전주기 냉매 관리’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냉매 사용 단계만이 아니라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체 과정을 관리하는 “전주기 관리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환경부 한상우 사무관은 세미나에서 냉매관리법 개정 추진 방향과 함께 냉매 회수·재생 시스템 확대 계획을 설명했다. 주요 정책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저GWP 냉매 전환, 둘째는 전주기 관리 시스템 구축, 셋째는 제도적 기반 강화다.
[자료 2. 한국 냉매관리법 개정 추진 방향]
출처 : ⓒ27기 김주희
정부는 냉매 관리 범위를 확대하고, 냉매 용기 관리와 누출 관리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냉매 회수 대상 확대와 재생냉매 활성화도 중요한 정책 방향으로 제시됐다.
특히 재생냉매는 앞으로 중요한 산업 분야로 주목 받고 있다. 재생냉매란 폐냉매를 회수한 뒤 정제 과정을 거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냉매를 의미한다. 이는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줄이고, 신규 냉매 생산량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탄소중립과 자원순환 측면 모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한국의 재생냉매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세미나에서는 앞으로 유지보수 과정에서 재생냉매 사용을 의무화하거나, 공공기관에 우선 사용을 권고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자연냉매 확대의 현실적인 어려움
최근 국제사회는 저GWP 냉매를 넘어 “자연냉매” 확대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자연냉매로는 프로판, 암모니아, CO₂ 냉매 등이 있다.
특히 유럽은 프로판 기반 냉매 전환 방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이다. 프로판은 가연성 물질이기 때문에 누출 시 화재 위험이 존재한다. 공동주택과 대형 상업시설이 많은 한국 환경에서는 이러한 위험성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세미나에서는 국제 안전기준과 국내 안전규정 차이도 중요한 문제로 언급됐다. 특히 중대형 냉동·공조 설비에 가연성 냉매를 적용할 경우 어떤 기준으로 안전성을 판단할 것인지가 산업계와 정부 모두의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냉매 산업은 제품 수명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냉동·공조 설비는 한 번 설치되면 10년에서 30년 이상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지금 어떤 냉매를 선택하느냐가 향후 수십 년간 산업 구조와 탄소배출 구조를 결정하게 된다.
유럽의 전략, “정책이 먼저 움직인다”
세미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유럽의 “정책 중심 접근법”이었다.
유럽은 산업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를 기다리기보다, 정부가 먼저 강력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산업 전환을 유도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실제로 EU는 2024년 이후 프로판 등 자연냉매 확대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으며, Kigali 개정서에 따라 냉매 누출을 사전에 줄이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자료 3. 유럽의 냉매 기술자 인증제도 및 Kigali 대응 교육 체계]
출처 : ⓒ27기 김주희
유럽 관계자는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면 산업계에서 당연히 반발과 우려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약 2000개 기업이 초기 정책 수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EU는 장기적인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산업이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는 단기적인 비용 부담보다 미래 시장 전환을 더 중요하게 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을 키워야 한다”
유럽 사례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기술자 인증·교육 시스템이었다. 현재 유럽에서는 약 40만 명의 인증 기술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재교육 제도까지 운영되고 있다. 기술자들은 냉매 취급 방법 뿐 아니라 위험 분석, 불법 냉매 사용 방지, 대체냉매 안전관리 등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이는 결국 탄소중립 전환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인력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냉매 전환 정책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인력 양성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기후부·산업부·환경부가 협력해 냉매를 안전하게 취급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 기술자 양성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냉매취급관리사 자격시험을 운영하고 있다 설명했다. 현재까지 총 13회의 시험이 진행되었고 약 300명의 전문 인력이 배출된 상태다. 또한 해당 자격제도는 2024년 1월 1일부터 국가공인 자격으로 지정되면서 산업 현장에서 보다 공신력 있는 전문 자격체계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냉매 전환 과정에서의 산업계 부담과 현실적 과제
그러나 산업계는 CO₂ 냉매와 자연냉매를 다루기 위한 장비 가격이 매우 높아 중소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며, 정부 차원의 보조금과 장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순히 GWP 150 이하 냉매 사용을 권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 내부에서 재생냉매와 관련 장비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 기반과 인프라를 함께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자료 4. 냉동공조 산업계의 F-gas 전환 관련 패널토론]
출처 : ⓒ27기 김주희
또한 산업계는 현재 추진 중인 냉매관리법의 저GWP 냉매 전환 및 전주기 관리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산업별 상황이 서로 다른 만큼 대체 냉매로 전환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일부 산업은 HF5 계열 냉매나 자연냉매로 비교적 빠르게 전환할 수 있지만, 대형 냉동·공조 시스템이나 특수 산업 분야는 설비 구조 변경, 특허 문제, 안전 기준 등의 이유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업계는 정부가 산업군별 특성과 전환 속도를 고려한 보다 세부적인 가이드라인과 단계별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폐냉매를 회수해 재생냉매로 활용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지만, 회수와 재생 과정에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회수 단계와 재생 단계 모두에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산업계는 재생냉매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순 규제만이 아니라 회수 체계와 재생 인프라 구축까지 포함한 재원적 환경 조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럽 측은 이러한 정책 전환 과정에서 산업계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초기에는 새로운 냉매에 맞춘 컴프레서와 콘덴서 설비 교체, 장비 가격 상승, 기술자 재교육 등으로 인해 기업들의 부담이 상당했으며, 교육 기간이 길어지면서 현장에서는 불만도 존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은 이를 단순한 규제가 아닌 미래 산업 전환 과정으로 바라봤으며, 새로운 냉매 시스템 확대가 오히려 전문 기술자 시장과 친환경 산업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로 다뤄진 분야는 반도체 산업이었다.
[자료 5.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활용되는 F-gas 구조]
출처 : ⓒ27기 김주희
반도체 공정에서는 식각(Etching), 세정(Cleaning), 증착(Deposition) 등 다양한 과정에서 F-gas가 사용된다. 반도체는 극도로 정밀한 산업이기 때문에 공정 환경 제어가 매우 중요하며, 온도와 습도, 미세먼지 뿐 아니라 사용되는 가스 종류까지 제품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문제는 대체가스를 적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날 최첨단 반도체는 나노 단위 공정으로 제작된다. 웨이퍼 하나를 생산하는 데만 수백에서 수천 개의 공정 레시피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스를 바꾸면 식각 속도, 회로 정밀도, 제품 수율 등이 모두 달라질 수 있다. 즉, 단순히 “친환경 가스를 쓰자”는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유럽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공정에 대체가스를 적용하는 데 약 10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대체가스를 찾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기존 품질과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과제라는 의미다.
삼성전자의 대응 전략
세미나에서는 삼성전자의 F-gas 저감 전략도 소개됐다.
[자료 6. 삼성전자가 설명한 반도체 공정 내 F-gas 사용과 감축 방향]
출처 : ⓒ27기 김주희
삼성전자는 현재 공정 최적화, 대체가스 개발, 처리시설 확대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감축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설명했다. 특히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가스를 처리하기 위해 RCS, POU SCR 등의 처리시설을 확대하고 있으며, 처리 효율을 92~97% 수준까지 높이는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규 대체가스 개발 역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공개 예정인 신규 가스 “G2 가스” 개발 계획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해외 사업장에서는 재생에너지 100% 사용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제품 생산량 확대가 아니라 글로벌 ESG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국제 협력
세미나 후반부에서는 국제 협력 필요성이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F-gas 문제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냉매 공급망, 반도체 장비, 안전기준, 기술 인증 체계가 모두 글로벌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은 유럽 뿐 아니라 미국·일본·대만·중국 등과 함께 협의체를 운영하며 감축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 역시 자연냉매 확대 경험과 히트펌프 활성화 정책 등을 공유하며 협력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유럽은 “모범 사례(best practice)” 공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산업 경쟁력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지속가능하게 생산하느냐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F-gas 감축이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산업 구조와 기술 체계,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전환 과정임을 보여줬다. 동시에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기술 개발만이 아니라 정책, 산업계, 국제사회, 그리고 전문인력 양성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역시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취재]탄소중립의 숨은 과제, F-gas를 줄여라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7기 김주희
유럽과 한국이 논의한 냉매·반도체 산업의 전환 방향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산업계의 탄소 감축 압박 역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금까지 탄소중립 논의는 주로 화석연료 발전이나 자동차 배출가스,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₂)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교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불화온실가스(F-gases)”가 새로운 핵심 감축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F-gas는 냉장고와 에어컨에 사용되는 냉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 사용되는 특수가스 등을 포함한다. 과거에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CFCs)의 대체재로 주목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일부 물질이 이산화탄소보다 수천 배에서 수만 배 이상 강한 온실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냉동·공조 산업 확대와 AI·데이터센터·반도체 산업 성장으로 F-gas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제사회는 이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료 1. EU-Korea 불화온실가스(F-gas)감축 및 관리 방안 세미나]
출처 : ⓒ27기 김주희
최근 3월 25일에 진행된 EU-한국 F-gas 감축 세미나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과 한국의 정책 담당자, 산업계 관계자, 기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미나에서는 냉매 전주기 관리, 재생냉매 활성화, 산업계의 현실적인 부담, 반도체 공정 대체가스 개발, 국제 협력 방향 등이 폭넓게 논의됐다.
냉매가 왜 기후위기의 핵심 문제가 되었나
냉매는 냉장고, 에어컨, 냉동창고, 히트펌프 등 열을 이동시키는 거의 모든 설비에 사용된다. 냉매 자체는 일반적으로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 순환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제품 노후화, 유지보수 미흡, 폐기 과정 등에서 냉매가 대기 중으로 누출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냉매 계열인 HFC(Hydrofluorocarbon)는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몬트리올 의정서 이후 CFC 대체 물질로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HFC는 매우 높은 지구온난화지수(GWP)를 가진다. 일부 냉매는 이산화탄소 대비 수천 배 이상의 온난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미나 발표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는 매년 약 2만7000톤의 HFC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중 약 70%가 냉매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F-gas 배출량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 수준까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AI 산업 성장과 데이터센터 확대는 냉각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며, 동시에 막대한 열을 발생시킨다.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냉각 시스템이 필수적이며, 결과적으로 냉매 사용량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즉, 디지털 산업 성장과 기후위기 대응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전주기 냉매 관리’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냉매 사용 단계만이 아니라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체 과정을 관리하는 “전주기 관리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환경부 한상우 사무관은 세미나에서 냉매관리법 개정 추진 방향과 함께 냉매 회수·재생 시스템 확대 계획을 설명했다. 주요 정책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저GWP 냉매 전환, 둘째는 전주기 관리 시스템 구축, 셋째는 제도적 기반 강화다.
[자료 2. 한국 냉매관리법 개정 추진 방향]
출처 : ⓒ27기 김주희
정부는 냉매 관리 범위를 확대하고, 냉매 용기 관리와 누출 관리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냉매 회수 대상 확대와 재생냉매 활성화도 중요한 정책 방향으로 제시됐다.
특히 재생냉매는 앞으로 중요한 산업 분야로 주목 받고 있다. 재생냉매란 폐냉매를 회수한 뒤 정제 과정을 거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냉매를 의미한다. 이는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줄이고, 신규 냉매 생산량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탄소중립과 자원순환 측면 모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한국의 재생냉매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세미나에서는 앞으로 유지보수 과정에서 재생냉매 사용을 의무화하거나, 공공기관에 우선 사용을 권고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자연냉매 확대의 현실적인 어려움
최근 국제사회는 저GWP 냉매를 넘어 “자연냉매” 확대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자연냉매로는 프로판, 암모니아, CO₂ 냉매 등이 있다.
특히 유럽은 프로판 기반 냉매 전환 방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이다. 프로판은 가연성 물질이기 때문에 누출 시 화재 위험이 존재한다. 공동주택과 대형 상업시설이 많은 한국 환경에서는 이러한 위험성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세미나에서는 국제 안전기준과 국내 안전규정 차이도 중요한 문제로 언급됐다. 특히 중대형 냉동·공조 설비에 가연성 냉매를 적용할 경우 어떤 기준으로 안전성을 판단할 것인지가 산업계와 정부 모두의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냉매 산업은 제품 수명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냉동·공조 설비는 한 번 설치되면 10년에서 30년 이상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지금 어떤 냉매를 선택하느냐가 향후 수십 년간 산업 구조와 탄소배출 구조를 결정하게 된다.
유럽의 전략, “정책이 먼저 움직인다”
세미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유럽의 “정책 중심 접근법”이었다.
유럽은 산업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를 기다리기보다, 정부가 먼저 강력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산업 전환을 유도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실제로 EU는 2024년 이후 프로판 등 자연냉매 확대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으며, Kigali 개정서에 따라 냉매 누출을 사전에 줄이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자료 3. 유럽의 냉매 기술자 인증제도 및 Kigali 대응 교육 체계]
출처 : ⓒ27기 김주희
유럽 관계자는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면 산업계에서 당연히 반발과 우려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약 2000개 기업이 초기 정책 수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EU는 장기적인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산업이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는 단기적인 비용 부담보다 미래 시장 전환을 더 중요하게 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을 키워야 한다”
유럽 사례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기술자 인증·교육 시스템이었다. 현재 유럽에서는 약 40만 명의 인증 기술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재교육 제도까지 운영되고 있다. 기술자들은 냉매 취급 방법 뿐 아니라 위험 분석, 불법 냉매 사용 방지, 대체냉매 안전관리 등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이는 결국 탄소중립 전환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인력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냉매 전환 정책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인력 양성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기후부·산업부·환경부가 협력해 냉매를 안전하게 취급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 기술자 양성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냉매취급관리사 자격시험을 운영하고 있다 설명했다. 현재까지 총 13회의 시험이 진행되었고 약 300명의 전문 인력이 배출된 상태다. 또한 해당 자격제도는 2024년 1월 1일부터 국가공인 자격으로 지정되면서 산업 현장에서 보다 공신력 있는 전문 자격체계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냉매 전환 과정에서의 산업계 부담과 현실적 과제
그러나 산업계는 CO₂ 냉매와 자연냉매를 다루기 위한 장비 가격이 매우 높아 중소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며, 정부 차원의 보조금과 장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순히 GWP 150 이하 냉매 사용을 권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 내부에서 재생냉매와 관련 장비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 기반과 인프라를 함께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자료 4. 냉동공조 산업계의 F-gas 전환 관련 패널토론]
출처 : ⓒ27기 김주희
또한 산업계는 현재 추진 중인 냉매관리법의 저GWP 냉매 전환 및 전주기 관리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산업별 상황이 서로 다른 만큼 대체 냉매로 전환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일부 산업은 HF5 계열 냉매나 자연냉매로 비교적 빠르게 전환할 수 있지만, 대형 냉동·공조 시스템이나 특수 산업 분야는 설비 구조 변경, 특허 문제, 안전 기준 등의 이유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업계는 정부가 산업군별 특성과 전환 속도를 고려한 보다 세부적인 가이드라인과 단계별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폐냉매를 회수해 재생냉매로 활용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지만, 회수와 재생 과정에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회수 단계와 재생 단계 모두에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산업계는 재생냉매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순 규제만이 아니라 회수 체계와 재생 인프라 구축까지 포함한 재원적 환경 조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럽 측은 이러한 정책 전환 과정에서 산업계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초기에는 새로운 냉매에 맞춘 컴프레서와 콘덴서 설비 교체, 장비 가격 상승, 기술자 재교육 등으로 인해 기업들의 부담이 상당했으며, 교육 기간이 길어지면서 현장에서는 불만도 존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은 이를 단순한 규제가 아닌 미래 산업 전환 과정으로 바라봤으며, 새로운 냉매 시스템 확대가 오히려 전문 기술자 시장과 친환경 산업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로 다뤄진 분야는 반도체 산업이었다.
[자료 5.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활용되는 F-gas 구조]
출처 : ⓒ27기 김주희
반도체 공정에서는 식각(Etching), 세정(Cleaning), 증착(Deposition) 등 다양한 과정에서 F-gas가 사용된다. 반도체는 극도로 정밀한 산업이기 때문에 공정 환경 제어가 매우 중요하며, 온도와 습도, 미세먼지 뿐 아니라 사용되는 가스 종류까지 제품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문제는 대체가스를 적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날 최첨단 반도체는 나노 단위 공정으로 제작된다. 웨이퍼 하나를 생산하는 데만 수백에서 수천 개의 공정 레시피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스를 바꾸면 식각 속도, 회로 정밀도, 제품 수율 등이 모두 달라질 수 있다. 즉, 단순히 “친환경 가스를 쓰자”는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유럽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공정에 대체가스를 적용하는 데 약 10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대체가스를 찾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기존 품질과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과제라는 의미다.
삼성전자의 대응 전략
세미나에서는 삼성전자의 F-gas 저감 전략도 소개됐다.
[자료 6. 삼성전자가 설명한 반도체 공정 내 F-gas 사용과 감축 방향]
출처 : ⓒ27기 김주희
삼성전자는 현재 공정 최적화, 대체가스 개발, 처리시설 확대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감축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설명했다. 특히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가스를 처리하기 위해 RCS, POU SCR 등의 처리시설을 확대하고 있으며, 처리 효율을 92~97% 수준까지 높이는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규 대체가스 개발 역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공개 예정인 신규 가스 “G2 가스” 개발 계획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해외 사업장에서는 재생에너지 100% 사용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제품 생산량 확대가 아니라 글로벌 ESG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국제 협력
세미나 후반부에서는 국제 협력 필요성이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F-gas 문제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냉매 공급망, 반도체 장비, 안전기준, 기술 인증 체계가 모두 글로벌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은 유럽 뿐 아니라 미국·일본·대만·중국 등과 함께 협의체를 운영하며 감축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 역시 자연냉매 확대 경험과 히트펌프 활성화 정책 등을 공유하며 협력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유럽은 “모범 사례(best practice)” 공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산업 경쟁력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지속가능하게 생산하느냐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F-gas 감축이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산업 구조와 기술 체계,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전환 과정임을 보여줬다. 동시에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기술 개발만이 아니라 정책, 산업계, 국제사회, 그리고 전문인력 양성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역시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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