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공학, 미학(美學)을 품다
전기공학, 미학(美學)을 품다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4기 배장민
[흉물로 여겨지는 전력설비]
바쁜 현대 사회에서 전기의 역할은 그 위상이 대단하다. 전기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옛날에는 전기 없이도 다 잘 살았어'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이 계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정전이 2~3시간만 발생해도 많은 불편함이 발생한다. 실제로 2011년 순환성 정전사태를 돌이켜 보았을 때 단순히 불편한 수준을 넘어서 공장의 납품계약 파기, 식당에서 식료품이 녹아 입은 피해, 대학 수시 원서접수 마감일자의 변경 등 많은 경제·사회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제 누구도 우리의 삶에 전기가 꼭 필요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자료 1. 2011.09.15 정전사태 당시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슈퍼마켓 모습]
출처 : 서울뉴스
꼭 필요한 전기이지만, 관련된 설비들이 우리집 근처로 오면 입장이 달라진다. 상쾌한 아침 창문을 열어 보이는 커다란 송전탑과 전선, 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안전하다고 하지만 불안함을 숨기기 어려운 원자력발전소 등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들이지만 거주지와 가까워지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극히 적다. '집값과 땅값을 떨어뜨리는 주된 범인'이라는 인식은 씻어내기 어려운 전력설비의 모습이다. 이런 점을 인식한 전력산업계 기업들은 전기공학에 미학을 더해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자칫 딱딱하고 흉물로 여겨질 수 있는 설비들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전기 사용은 더욱 효율적으로, 하지만 심미적인 우수성이 드러나도록 설계했다. 이 기사에서 모습을 탈바꿈한 전력설비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발전 및 송전 계통에서 미학을 적용하다]
첫 번째는 한국중부발전 소속 서울발전본부이다. 서울발전본부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과거 당인리 화력발전소 자리에 새로 만들어진 발전소이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1930년에 지어진 대한민국의 첫 화력발전소였으며, 2019년 서울발전본부로 탈바꿈하기 전까지 긴 시간 동안 전력 생산을 맡아왔다. 하지만, 도심 내 화력발전소가 미치는 환경오염이 상당했고 0.02%라는 현저히 낮은 전력 자립도 또한 문제가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LNG를 사용한 복합화력발전소로 탈바꿈하면서 과감하게 지하화했다. 지하화된 발전소 덕분에 지상 공간에는 한강변이 보이는 공원인 '마포새빛문화숲'이 만들어졌고, 수영장, 풋살장, 공연장 등 주민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제공되었다. 전기의 생산은 물론 지역난방 또한 가능한 발전소라는 점에서 주민들에게 쉼터가 됨과 더불어 물론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하도록 설계됐다. 서울광역시 370만 가구의 절반이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전력을 생산하면서도 주민들에게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서울발전본부는 도시미학과 전기공학이 합쳐진 예시이다.
[자료 2. 서울발전본부 전경 ]
출처 : 한국중부발전
[자료 3. 마포새빛문화숲 전경]
출처 : 서울시, 내손안의 서울
두 번째는 2024 한국건축문화대상 학생 설계공모전 최우수상작인 'PLANT PLANT PLANT'이다. 이 작품은 아직 실제 발전소에 적용되지 않은 아이디어 작품으로, 서울시의 목동 열병합 발전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위에서 소개한 서울발전본부와 같이 목동 열병합 발전소를 지하화하여 공간을 확보하고, 그 내부에 식물원을 조성한다. 그리고 굴뚝에서 나오는 수증기의 일부를 식물원과 관으로 연결하여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한다. 또한 굴뚝 건물 구조의 일부를 스마트팜으로 활용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팜 교육센터와 팜 스토어 등을 제공함으로써 발전소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료 4. 현재 목동열병합발전소 모습(위)와 PLANT PLANT PLANT 구상도(아래)]
세 번째는 핀란드의 변전소 사례 및 여러 나라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송전탑 아이디어 작품이다. 핀란드의 경우 눈이 많이 내리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활용한 변전소가 있다. 핀란드의 건축회사 Virkkunen & Co가 설계한 작품으로, 다이아몬드 모양의 완목을 단 대형 탑 한 개와 수평 구조의 완목을 단 낮은 삼각 송전탑 두 개를 배열한 모양이다. 특히 둔탁한 색이 아니라 흰색 용접처리가 된 강철을 이용하여 심미적인 요소를 극대화했다.
[자료 5. Virkkunen & Co가 설계한 핀란드의 변전소 내 모습 ]
출처 : Virkkunen & Co
기존의 딱딱한 송전탑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디자인을 뽐내는 작품이 있다. 바로 Choi+Shine Architects의 'The Land of Giants' 송전탑 작품이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송전탑은 아니지만, 자칫 흉물로 여겨질 수 있는 송전탑을 사람 형상으로 재미있게 표현한 매력이 있다. 특히 한국인 최진 작가가 디자인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하여 평창에서의 송전탑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인상 깊다.
[자료 6. The Land of Giants, Proposal for Landsnet, Iceland(좌), Proposal for Lysefjiord, Norway(우) ]
[자료 7. The Land of Giants, Proposal for 2018 Pyeongchang Olympics, Korea]
[배전 계통에서 미학을 적용하다]
우리 생활 환경과 가장 밀접한 전력의 수송 과정은 바로 배전 계통이다. 도심 주변의 전선, 변압기, 심지어 우리가 사용하는 콘센트까지 모두 배전 계통에 속한다. 이런 배전 계통에도 미학을 적용하여 도심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대표적인 예시는 지상변압기(또는 지상개폐기)이다. 지상변압기는 변전계통의 운영과 고장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설비이지만,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통행에 불편함을 주는 회색의 큰 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한국전력은 지상변압기에 태양광 그림과 자연 풍경 그림을 넣어 외관상으로 아름답게 했다. 최근에는 한국 전통무늬를 부착해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자료 8. 관리되지 않은 지상변압기(좌)와 심미적 요소를 적용한 지상변압기(우)]
출처 : 부천신문(좌), ⓒ24기 배장민(우)
또한 전봇대에 그림을 그려넣은 사례도 있다. 각 지역의 특색이나 테마를 중심으로 회색 시멘트가 아닌 예쁜 그림을 그려넣어 도심경관을 꾸미기도 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일대의 전봇대에 그림을 그려넣은 '아트프린트 프로젝트'의 결과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네인 혜화동의 고즈넉한 모습과 함께 인근에 위치한 혜화초등학교,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 등 많은 주민들이 다니는 거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심미적 요소를 더하고 불법 광고물 부착을 줄였다.
[자료 9. '아트프린트 프로젝트'를 적용한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전봇대 모습]
출처 : 동아일보
[건축과 하나된 전기공학]
건축에서도 전기공학은 아름다움을 준다. 특히, 제로에너지빌딩이나 태양광 패널 설치로 일부 전력을 조달하길 희망하는 기업들이나 공장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한화빌딩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FKI 타워가 있다.
한화빌딩은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ouncil on Tall Buildings and Urban Habitat, CTBUH)가 주최한 '2021 Tall + Urban Innovation' 컨퍼런스에서 리노베이션 부문에서 대상으로 선정된 건물로, 2016년 3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45개월 간 리모델링을 거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친환경 빌딩이다. 자칫 유리창으로만 보일 수 있으나, 유리창과 유리창 사이에 태양광 패널을 넣어 건물의 에너지 일부를 친환경 적으로 얻을 수 있게 했다. 청계천을 산책하면서 볼 수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물로, 전기공학이 건물에 적용된 우수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자료 10. 한화빌딩 전경(좌), 야경(우)]
출처 : 한화그룹
2013년 완공된 여의도 FKI 타워는 지그재그 형태의 외관을 자랑하는 여의도의 대표 건물이다. 외관이 독특한 것이 특징인데, 그 이유는 바로 건물일체형 태양광설비(BIPV)이다. 한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가림 없이 풍부한 일사량을 받을 수 있고, 하늘을 향해 30도 정도 기울어진 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건물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건물 스스로 발전소의 역할을 하는 셈인 것이다.
[자료 11. FKI 타워 전경(좌), FKI 타워에 적용된 태양광 패널(우)]
이처럼 건축에서도 전기공학이 아름다움을 주는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건물의 꼭대기에 조명을 설치하여 야경을 아름답게 하는 정도에서 머물렀다면, 이제는 에너지의 관점에서 전기공학을 건물에 적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아름다움과 에너지 부문을 모두 잡은 것이다.
[흉물이 아닌 예술로, 전기공학이 나아가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우리 속담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미적 요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따라서 여러 분야에서 기술력과 함께 심미적 요소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요구하고 있다. 전기공학 역시 단순히 에너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주변 경관과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만, 지리적 여건과 경제적인 여건 등의 현실에 언제 상용화가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불투명하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솟아 나오고 다른 아이디어와 결합해 더 좋은 결과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편리함을 더해 새로움을 제공한다는 공학의 의의에 맞게, 편리함을 넘어서 그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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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자인과 태양광] 생활 속에 녹아든 태양광 시설", 20기 서범석,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520
2. "[녹색 나들이 시리즈] [취재] 대제로시대, 이제는 빌딩도 에너지 제로?", 22기 정이진, 23기 김태현, 24기 유현지, 25기 구윤서, 26기 김승진, 김예은, 류호용,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596
참고문헌
[도시의 개발과 전력설비]
1) 신미진, "열병합 발전소를 친환경 식물원으로", 서울경제, 2024.10.30, https://www.sedaily.com/NewsView/2DFRR7FI3X
2)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 소개, 2001.04.22, https://www.komipo.co.kr/fr/content/31/main.do?mnCd=FN021104
3) KOSIS, "행정구역(시군구)별, 성별 인구수", 2024.11.04,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B040A3&checkFla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