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 탈원전편
[사진 1. 대만의 원자력발전소]
출처 : 동아사이언스
화석연료를 제외한 에너지들 중에서 효율적인 에너지 하나를 꼽자면 원자력 발전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생산되는 전력의 30%를 차지할 만큼 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지난 30여 년간 값싸고 질 좋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원자력 발전은 국가 산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감수해야하는 것이 많은 에너지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중대 사고가 3번 있었다.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이다. 이 사고들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원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일본에 비해 지진에 자유로웠던 한국도 잇따른 대규모 지진으로 원전의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고,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발표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약속했으며, 2017년 10월 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후속조치 및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 안건을 통해 이에 대한 구체적 실행계획과 원전 안전기준 강화 대책,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을 보고했다. 이는 정부는 에너지전환(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중장기 목표와 방향을 설명한다. 에너지전환 로드맵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을 위해 신규 원전 건설계획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 등을 통해 원전은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는 등의 세부계획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 원전의 단계적 감축의 자세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그래프 1. 단계적 감축 대상 원전 현황 및 향후 전망]
출처 : 산업통상자원부
신고리 5 · 6호기는 공론화 결과에 따라 공사를 재개하되, 현재 계획된 신규원전 건설계획은 백지화하겠다.
노후 원전은 수명연장을 금지하며, 월성 1호기는 전력수급 안정성 등을 고려하여 조기 폐쇄하겠다.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원전은 ‘17년 24기에서 ‘22년 28기, ‘31년 18기, ‘38년 14기 등으로 단계적으로 감축되며, 이러한 원전의 단계적 감축방안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31년)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38년)에 반영할 것이다.
원전의 단계적 감축과 관련하여, 적법하고 정당하게 지출된 비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계부처 협의 및 국회심의를 거쳐 기금 등 여유 재원을 활용하여 보전하되, 필요시 법령상 근거 마련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후 발표된 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주요 내용에는 월성 원전 1호기를 내년 중 조기 폐쇄하고, 고리 2, 3, 4호기 등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연장을 금지하며, 천지 1, 2호기 등 신규 원전 6기를 전면 백지화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계획들이 나오는 과정에서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 결정 후 경제성 논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위한 공론화위원회 구성의 논란, 신한울 3, 4호 건설 재개 요구, 원전 수출 논란 등 탈원전 정책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갈등을 빚고 있는 원자력발전의 정책 방향성은 어떻게 결정해야하는 것일까. 앞으로 나올 내용에서 다양한 원자력발전 정책 방향성을 지닌 6개 국가에 대해 원자력발전의 방향성에 대해서 알아보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단순히 원자력의 비중 변화뿐만 아니라, 변화된 에너지 발전에 대한 준비가 잘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자 한다.
원자력 발전은 여전히 필요하다, 프랑스와 중국
[그림 1. EU 회원국의 원자력 발전 현황]
출처 : Eurostat
2018년 유럽연합(EU)의 공식 통계기구 ‘Eurostat’은 EU 최대 원자력 발전국가로 프랑스를 꼽았다. 프랑스는 국가 전체 전력의 약 75%를 원자력 발전을 통해 생산하고 있는 나라로, 현재 신규 원자로 1기를 추가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만큼 원자력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국가다. 한 때 프랑스는 독일과 같이 탈원전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에 맞춰, 2025년까지 75%에 육박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50%대로 낮추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방향을 바꿔 2030년, 혹은 2035년으로 기간을 늘리는 등 탈원전의 방향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원자력 발전에 있어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프랑스 원자력 안전청(ASN)에서는 품질검사와 품질개발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프랑스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 또한 자국의 원전 안정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프랑스는 원전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은 직접 “전력생산이 불안정해 원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언급하며 원자력 발전을 현재와 같이 지속하려는 정책의 방향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림 2. 중국의 원자력 체제]
출처 : 중국의 원자력 정책 및 수출 전략 분석
중국은 제13차 5개년 원자력공업발전계획(2016~2020년) 등을 통해 원자력 발전을 꾸준히 확대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확고히 했으며, 이를 통해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임을 드러냈다. 특히 중국은 원전을 하나의 수출품, 혹은 경제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2016년 이래로 화능국제원자력기술공사와 대형 원전 회사들이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원자력 수출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또한 원자로 15기를 추가적으로 건설하고,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해 국내대학설립을 추진하는 등 그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탈원전 시도 후 다시 재개, 일본
이웃 나라의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나라로서, 생산 단가가 저렴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강화, 2020년까지 9기, 30년까지 14기 이상의 증설을 계획했다. 그러나 2011년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는 후쿠시마 제1 원전 붕괴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는 소련의 체르노빌 이후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로 평가 받았다. 이는 일본의 에너지 수급 정책에 영향을 큰 타격을 주었으며 원전사고 이후 ‘원전 제로(zero)’ 정책을 선언, 점차적으로 가동을 중단하며 2012년 5월 5일 홋카이도의 도마리 원전 3호기의 운전정지로 일본의 모든 원전을 가동을 중지하였다.
[그래프 2. 일본의 전기료, 액화 천연가스, 석탄 가격 (2009~2015년)]
출처 :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i
원전의 감소는 곧 전력 수급을 위한 연료 수입으로 이어졌다. 결국 일본 정부는 무역수지 적자, 전력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블랙아웃(Black Out) 현상과 전기료의 인상을 견디지 못하고 원전 제로 정책을 철회하였다. 다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중대사고 및 외부재해에 대한 기준을 강화한 ‘신안전기준’을 모든 원전에 적용하여, 이를 충족한 원전에 대해서만 운영 재개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제5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3E+S, Energy Security(자급률), Economic Efficiency(전력 효율), Environment(친환경) + Safety(안정성)’ 원칙을 기준으로 원전의 비중을 20~22%로 설정하여 원자력을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 구조의 안정성에 공헌하는 중요한 기저 부하 전원’이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2050년 자기 전략에서는 원자력을 ‘실용단계에 있는 탈탄소화의 선택지’라고 언급하며 원자력 재가동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그러나 2030년 원자력 비율 20~22%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30기 이상의 원전 재가동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 재가동 원전은 9기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세계 각지에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재고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건설계획을 재검토 및 중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원전사고 이후의 일본의 탈원전 정책과 철회는 급격한 탈원전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며, 이는 우리나라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탈원전 정책을 재고하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탈원전의 선두주자, 독일
원자력 발전 및 에너지 정책에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국가가 있다면,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에너지전환(Energiewende)을 추진하기 위해 ‘2010년 에너지구상(Energy Concept)’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및 탈원전, 온실가스 감축 등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였다. 하지만 2010년 당시 메르켈 연립정부는 전력공급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위하여 2000년 탈원전을 선언하며 32년으로 제한한 원전의 가동기간을 8-14년 연장함으로써 탈원전을 보류하였다. 그러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원자력법을 개정하고 원전 8기의의 즉각 폐쇄와 2022년까지 단계적인 폐쇄를 결정하고, 앞선 ‘2010년 에너지구상’의 차질 없는 추진을 위해 관련 법률을 정비한 ‘2011년 에너지패키지’를 발표하였다.
2011년 독일은 정책의 방향을 탈원전으로 돌리며 모든 원전의 가동기간을 32년으로 정하고 2022년까지 각 원전의 폐쇄시기를 명시했다. 또한 2000년에 제시된 재생에너지법(Erneuerbare Energien Gesetz, EEG)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에게 지급되는 재생에너지 부과금의 지원을 재검토하고 무분별한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를 제한하였다.
[표1. 독일의 에너지전환 목표 및 주요 내용]
출처 : 독일의 탈원전 정책결정과 영향
[ 그래프 3. 독일의 1차 에너지 소비 비교 (2010년, 2015년)]
출처 : 독일의 탈원전 정책결정과 영향
탈원전 정책 이후 독일의 1차 에너지 소비 구성은 2015년 기준 석유 32%, 석탄 25%, 천연가스 21%, 신재생 14%. 원자력 8%로 화석연료 의존도가 탈원전 이전인 2010년 78%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수급 현황은 독일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 측면에서 탈원전으로 인한 전력부족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백업전원으로 자국의 풍부한 화석연료의 이용을 지속하고 있다는 특징을 나타낸다. 독일은 주로 갈탄을 많이 이용하는데 국내에만 약 720여 톤이 매장되어 있으며, 약 400년간 사용될 수 있다고 추산되었다. 하지만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의 경우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외교적인 분쟁이 발생하면 전력공급이 불안정해 질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EEG의 제정으로 지속적으로 설비 확대가 되면서 4%가량 점유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날씨에 따라 발전량의 편차가 큰 만큼 불안정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도 2017년 1월, 150%의 높은 전력예비율에도 불구하고 겨울철 최대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대정전의 위기를 경험하였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2011년 본격적인 탈원전 정책 이후 전력 공급이 다소 불안정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률이 둔화되었다. 탈원전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이지만, 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독일의 자본을 기반으로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원자력 발전을 위한 국민투표까지, 혼란의 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 사고의 위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었고, 이는 대만에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대만의 경우 일본과 같은 환태평양지진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사고의 위험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화석연료가 나지 않는 국가인 만큼 전체 에너지의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전력 공급이 그만큼 불안정하다. 대만의 입장에서 원자력은, 큰 위험 부담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에너지임과 동시에 불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큰 열쇠인 것이다.
대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을 내렸다. “2025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 열쇠로 문 열기를 포기하고 탈원전을 선택한 것이다. 공정률이 98%에 이르는 원자로 두 기의 건설을 동결시키고 더 이상 원전을 건설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이후 대만의 원전 총 6기 가운데 4기의 가동이 중단되었다. 대만 총 전력생산의 16%를 차지하던 원전은 5년 만에 8% 가량이 줄었다. 대만전력에 따르면 2018년 4월~8월 여유 전력이 10% 이상인 상태는 고작 13일 밖에 되지 않았다. 2017년엔 LNG 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블랙아웃도 발생했다.
순식간에 여론은 나빠졌고 지난 해 11월 말에는 탈원전 정책 지속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도 진행했다. 국민들은 원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대만 경제부는 핵폐기물 처리장과 경제적 손실을 근거로 탈원전을 지속할 거라 밝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원자력발전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프랑스와 중국, 탈원전 시도 후 다시 원전을 재개하는 일본, 탈원전 정책의 선두주자 독일, 탈원전 국민투표를 진행한 혼란의 대만까지 여러 나라의 원자력 정책들을 알아보았다.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은 복합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원자력에너지의 사용을 두고 찬성과 반대 혹은 맞는가, 틀리는가의 이념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석탄, 석유, 천연가스의 사용을 줄이자는 공통된 이행과제를 두고 있으며, 원자력발전은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도와주지만,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나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된다는 것, 사용 후 핵연료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한다. 태양에너지와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안정적인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획기적인 기술발전과 막대한 투자가 요구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재생에너지의 배경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원 혼합(MIX)은 대단히 중요한 선택 과제이다. 원자력 정책 방향성에 대해서 알아보았지만,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에너지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한다. 탈원전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하는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 참 고 문 헌 ]
1. 정부, 신고리 5 · 6호기 건설재개 방침과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 작성, 2017.10.24, 산업통상자원부
2. 신고리 5 · 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조사 보고서, 2017.10.20, 신고리 5 · 6호기 공론화위원회
3. 중국의 원자력 정책 및 수출 전략 분석, 김연종 외 2명, 2018.11, 한국기술혁신학회
4. 세계 원전정책 동향 업데이트, 노동석 외 4명, 2018.08.10, 에너지경제연구원
5. 탈원전 국가에서의 반원전 운동 및 여론의 변화와 시사점, 이대연 외 1명, 2018.05.18, 에너지경제연구원
6. 독일의 탈원전 정책결정과 영향, 윤성원 외 2명, 2017.11, 한국기술혁신학회
7. 일본 원자력발전 현황과 원전정책에 미치는 영향, 2017.03.28, 한일재단 일본지식정보센터
8. 대만의 원자력발전소 건절은 어떻게 중단 되었는가, 최창근 외 1명, 2015.09, 한국정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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