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포장지 속 흰 봉지! 모르고 지나쳤던 '실리카겔'의 능력
15기 김혜림
[사진 1. 실리카겔]
출처 : 브리태니커
우리는 흔히 과자나 약통, 김 포장지 등 일상생활 속 여기저기서 흰색의 작은 실리카겔(silica gel) 팩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실리카겔 팩은 규소와 산소가 주성분인 투명한 모양의 다공성 물질인 다량의 실리카겔로 이루어져 있으며, 미세한 수분을 흡착해 내용물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하여 식품 포장, 의류, 전자제품 포장에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포장지 개봉 후, 이 실리카겔이 필요 없다고 느껴져서 포장지와 함께 곧장 쓰레기통으로 버리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무심코 버려왔던 작은 실리카겔이 수분흡수기능을 이용하여 최근 물 부족 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해 줄 핵심소재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실리카겔은 규산나트륨 수용액을 염산이나 황산으로 처리해서 만든다. 수용액 상태에서는 수용액에 미세한 산화규소 입자가 떠 있는 겔 형태인데, 이것을 건조시키면 액체는 증발하고 산화규소 입자만 남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형태의 실리카겔이 된다. 눈으로 봤을 때는 표면이 매끈해 보이지만, 증발한 액체가 있던 원래 공간이 텅 비게 되면서 현미경으로 관찰 시 표면에 무수히 많은 미세한 구멍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실리카겔은 공기 속 수분과 접촉하는 표면적이 넓어 수분을 잘 흡수하여 제습제로 많이 사용된다. 여기서 우리는 실리카겔의 수분흡수 기능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제는 실리카겔 팩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며, 인류가 직면한 여러 난제를 풀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에 대한 사례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1.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공기 중에서의 물 채취 : 하이드로 하베스트 시스템(Hydro Harvest System)
인구증가에 따른 물 사용량의 급증과 물 자원의 지역적 편재 및 도시화, 이상기후로 인한 가뭄으로 인해 지구 상의 많은 곳에서 물 부족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현재 세계 인구의 약 40% 정도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2025년에는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로 1인당 물 수요가 더욱더 급증하여 세계인구 절반이 물 부족 현상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인 문제로 직면한 물 부족 문제를 개선하도록 각국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호주의 뉴캐슬대 부설 하이드로 하베스트 센터(Hydro Harvest Center) 소속의 연구팀이 지구촌 물 부족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진 2. 하이드로 하베스트 장치]
출처 : University of New Castle
이들은 공기 중의 수분을 포집하여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환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뉴캐슬대 연구팀을 이끄는 ‘베다드 모그타더리(Behdad Moghtaderi)’ 교수는 전 세계 누구나,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도 이용하기 위해 가격이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실리카겔을 활용하였고, 최대한 단순하게 장비를 설계하였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대기 채취를 통해 물을 얻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열을 흡수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개발도상국들에게 유용하게 쓰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실리카겔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실리카겔을 활용하여 물을 얻었을까?
[사진 3. 실리카겔 볼]
출처 : University of New Castle
이들이 개발한 하이드로 하베스트 장치는 시원한 밤공기의 습기를 흡수하기 위해 실리카겔 볼을 사용한다. 여기서 실리카겔 볼은 방습제 또는 물을 끌어들이는 물질로 작용한다. 이 장치는 밤에 실리카겔을 이용하여 볼 안에 물을 흡수한 다음, 흡수한 물을 낮에 태양에너지로 데워서 증발시키고, 열변환기를 통해 증발한 수증기를 냉각시켜 수분을 포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도 시도됐던, 공기를 이슬점 이하로 냉각시키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하이드로 하베스트 장치는 공기를 가열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효율을 극대화했다. 공기가 뜨거울수록 그만큼 수분을 더 많이 머금을 수 있으므로, 태양에너지로 실리카겔이 머금고 있는 수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증발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연구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이 모그타더리 교수의 생각이다.
이러한 친환경 기술은 기후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서나 작동할 수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식수 발전의 미래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물 부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물의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2. 수분을 포집해 태양광을 이용하여 수소를 만드는 페인트 : 솔라페인트(Solar Paint)
[사진 5. 페인트]
출처 : interesting engineering
실리카겔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해낸다면 어떨까? 수증기를 흡수한 후 분해하여 깨끗한 에너지원인 수소를 만들 수 있는 ‘솔라페인트’를 주목해보자.
RMIT대학의 연구팀은 실리카겔로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이 솔라페인트는 크게 두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구성요소는 이산화티타늄이다. 이는 자외선 차단제에도 들어있듯이 자외선을 흡수하는 데 매우 효율적이어서 태양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두 번째 구성요소는 이들이 개발한 합성 몰리브덴 황화물이다. 이 물질엔 실리카겔이 포함되어 있어 공기 중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이러한 성분들로 인해 개발된 페인트 안에서는 강한 흡수력으로 공기 중에서 수증기를 포집하고 이산화티타늄이 태양광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한 후, 그 에너지를 합성 몰리브덴 황화물로 전달된다. 이 합성물질은 촉매 작용을 할 수 있어 물을 수소와 산소 기체로 분해하여 청정에너지인 수소를 만들 수 있다. 이때 얻은 수소는 연료전지에 사용되며 부산물은 물과 열뿐이다.
[그림 1. 솔라페인트의 원리]
출처 : curiosity
비록 솔라페인트가 기존의 태양광 패널보다 에너지 효율이 적지만, 솔라페인트의 에너지 생산 과정은 태양광 패널을 활용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간편하여 많은 인력과 비용이 필요치 않고, 유해 화학물질이 발생하지도 않는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는 기존에 있는 에너지 생산 방식과 비교했을 때 에너지를 생산하는 매우 저렴한 방법이 된다. 따라서 경제적인 이유로 태양전지판을 설치하지 못하지만, 수소를 생산하기에는 충분한 조사량을 갖는 표면에 솔라페인트를 사용하여 태양광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페인트 개발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원인 토번 대네키(Torben Daeneke) 박사는 실제 응용을 위해 현재 수소 생산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생산된 수소를 저장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기존 볼타전지 기반의 태양광 패널을 저렴한 대체재인 페인트로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솔라페인트가 태양광 패널의 대체재로 이용될 만큼의 에너지 효율성을 보장한다면, 태양광과 공기 중의 수분만으로 수소를 생산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에너지 생산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므로 예상된다. 이는 곧 또 하나의 새로운 대체에너지로써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3. 버려지는 폐온수를 재활용하는 냉방시스템 : 저온 열구동 흡착식 냉방시스템
[사진 4. 흡착식 냉동기]
출처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산업현장에서 소각로나 보일러 가동 후 발생하는 250℃ 이상의 폐열은 난방, 전력생산 등에 재활용되지만,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60~90℃의 폐온수는 활용기술이 없어 대부분 버려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원장 이성일, 이하 생기원) 열유체시스템그룹 권오경 그룹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90℃ 이하의 폐온수를 냉방에 재활용하는 ‘저온 열구동 7kW급 흡착식 냉방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는 폐열을 버릴 때 자연에 해가 없는 온도로 낮춘 후 배출해야 하는 단계를 생략해 추가 에너지 사용의 발생을 막고, 프레온가스를 냉매로 사용하는 전기식 냉방기와는 달리 물을 냉매로 활용하여 온실기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환경 냉방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흡착식 냉동기는 고체 흡착제를 사용해 수분의 흡착과 탈착, 그리고 탈착된 수분이 응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냉각 효과를 발생시킨다. 흡착제에는 제습 효과가 뛰어난 실리카겔 또는 제올라이트가 사용된다. 이 냉동기는 뜨거운 마당에 물을 뿌리면 물이 기화되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해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며, 저압 진공상태인 증발기에 물이 공급되면 약 5℃에서 증발하면서 증발량만큼의 열을 주변으로부터 빼앗아 냉각 효과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증발한 수분을 흡착제가 흡수하는데, 이를 말려 재사용하기 위한 탈착 공정에서 외부 열원이 필요하다. 여기서 탈착에 필요한 열원은 60~90℃면 가능해 저온 폐온수를 재활용할 수 있다. 또한, 전기식 에어컨의 10분의 1 정도 전력만으로 작동 가능해 에너지 절감 효과가 크다.
사실 흡착식 냉방시스템은 일본을 비롯해 독일, 중국 등에서 이미 활발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연구팀은 흡착제 합성 및 코팅 원천기술과 이를 적용한 흡착탑과 흡착식 냉방시스템 설계기술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는 불모지였던 저온 폐열기술 분야를 개척하게 되었고, 앞으로 에너지와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냉방시스템으로 전망된다.
4. 일상생활 속 '실리카겔'
실리카겔은 물, 에너지, 냉동기술 등 여러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실리카겔의 수분흡수 기능을 핵심으로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실리카겔의 수분흡수 기능은 우리가 이제는 실리카겔을 무심코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이 조그마한 실리카겔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유익하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실리카겔 활용법으로는 쉽게 습해지기 쉬운 장마철에 곰팡이가 번식할 수 있는 옷장, 서랍장 및 신발장에 실리카겔을 비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빠르게 습기를 흡수하고 악취제거와 동시에 곰팡이를 예방할 수 있다. 또 수분의 응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뿌연 김이 차량 앞 유리에 서리면, 실리카겔 팩을 통해 습기를 흡수하여 유리가 깨끗해지게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실리카겔을 통해 공구 상자의 습도를 제거하여 부식을 방지할 수 있고, 사진 손상의 큰 원인인 `습기`를 흡수하여 사진을 보호하거나 카메라 렌즈의 결로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흡습제로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실리카겔은 산성을 띄어서(PH 4.0~6.0) 정밀 제품에 접촉 시 제품의 손상을 가져올 수 있으며, 흡습력이 한정되어 있고 초기 흡습력이 강한 관계로 장기간 유통되는 제품에는 효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버려왔던 실리카겔은 무심코 버린 것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활용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모르고 지나쳐서 쓰레기가 되곤 했지만, 이제부터는 일상에서 접근하기 쉽고 누구나 간단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 실리카겔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문헌
1. Water harvesting from the atmosphere to solve global shortage , NORTH QUEENLAND REGISTER , 2018.03.23
2. Robot cops, Solar paint and Solar roads , ABC , 2017.10.10
3. 태양광을 흡수하여 수소를 만드는 페인트(Researchers have developed a paint which can absorb sunlight and produce hydrogen) , NDSL, 2017.06.28
4. 물과 에너지 문제, 실리카겔이 해결? , The Science Times , 2018.04.05
5. 아직도 그냥 버리세요? 실리카겔로 습기제로 만드는 6가지 방법! , 한화케미칼 공식 블로그 , 2016.07.21
6. 버려지는 저온 폐열을 이용한 저전력 흡착식 냉방시스템 개발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 2018.05.11
7. 실리카겔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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