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배터리 규제까지? 업계 준비 철저히 했어야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5기 남궁성
시작부터 혼란스러운 트럼프 2기
트럼프 2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미국 대선은 공화당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고, 어떻게 정세를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트럼프는 유명한 탈 ESG 인이다. 친환경 산업에 대해 '녹색 신종 사기'라고 이름 붙인 바 있으며 IRA 폐지, 전기차 보조금 철폐, 화석연료 확대에 이어 기후 협정 탈퇴에 이르는 적극적인 탈 ESG 행보를 보일 것이라 선언했다.
물론 IRA의 완전 폐지에 대해서는 공화당 측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대 입장이 존재한다. 이후 발생할 부작용 때문이다. 또한 전기차 보조금 철폐도 결론적으로는 정부 효율부 수장인 일론 머스크의 기업인 테슬라에게는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폐지하려 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렇듯 취임식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트럼프 2기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될 양상이다.
배터리 대수요 시대 개막 목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를 견인할 산업 섹터는 거의 확실시되었다. 트럼프의 바람과는 다르게 친환경 관련 산업이 올해를 어느 정도 이끌 전망이다. 올해의 화두는 AI, 전기차, 로봇, ESS, 조선, 원전 등이다. 베터리가 적극적으로 필요한 섹터가 다수 포진해 있으며, 친환경 쪽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분야들도 많다.
[자료 1.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2025 주요 업종]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AI부터 살펴보자. AI의 위력은 꾸준히 강했다. 엔비디아는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독점적인 생태계를 바탕으로 업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여타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독점성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나 쉽지 않아 보인다. 반도체 섹터는 자율주행차, 로봇, 컴퓨터 등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부품인 만큼 전망은 더할 나위 없이 밝다.
전기차는 대표적인 친환경 모빌리티로 테슬라를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 중이다. 비록 캐즘에 의해 2026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수요가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기는 하나, 전기차의 가장 큰 문제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를 저가로 만들거나, 싸게 수입하는 능력을 점차 보유함에 따라 수요는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배터리 기술은 적극적인 R&D에 의해 효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로봇은 심장에 배터리를 달고 움직이는 원리인 만큼 배터리의 비중이 크다. 로봇 또한 테슬라가 개발하고 있는 분야다. 일명 옵티머스라고 불리는 테슬라의 AI 기반 로봇은 앞으로 키오스크처럼 대중의 일상을 돕고 산업계의 일 처리 효율성을 높여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SS는 배터리의 집합체다. AI 시대의 개막을 넘어 이제는 AI가 일상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활용되느냐가 관건이 되었는데, AI의 엄청난 정보 처리량을 감당하기 위한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ESS의 존재가 절실하다. ESS를 넘어 원전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배터리의 집합체인 ESS에 높은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테슬라는 자체 ESS인 메가팩을 보유하고 있으며, 배터리에 필요한 리튬을 자체적으로 채굴할 준비까지 거의 마친 상태다.
아직은 배터리 사용이 친환경적이지 않다
배터리의 사용량 증가는 환경적 측면에서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석탄을 통해 발전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부산물이 발생하지 않고, 온실가스가 배출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배터리의 문제는 폐기될 때 발생한다.
[자료 2. 폐배터리들이 재활용되지 못하고 쌓여있는 모습]
출처: Goodnews
배터리는 각종 중금속과 전해액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카드뮴, 니켈, 납은 인체에도 해로운 독성물질이며, 리튬도 폐 손상을 유발하는 등 안전한 물질은 아니다. 이런 물질들을 함유한 폐배터리를 폐기 시 그대로 매립할 경우 심각한 토양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폐배터리를 재활용해야 한다. 폐배터리 재활용은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점을 가진다.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폐배터리를 분해하고 용해시켜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의 원재료를 회수한다. 이렇게 얻은 광물은 추가적인 배터리 제작에 쓰여 그 과정에서 원가 절감 효과를 불러온다. 또 원자재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환경보호와 경제적 이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셈이다.
미국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폐배터리 재활용 비율을 확대하고 있었다.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량품인 스크랩도 재활용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자료 3. 폐배터리 원료 발생량 전망]
출처: SK 에코플랜트 뉴스룸
각종 기업이 폐배터리 재활용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재활용률이 그다지 좋은 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 대상에 속한 전지들의 재활용률을 살펴보면 2022년 기준 망간·알칼리망간 전지는 출고수입량 대비 재활용률이 28.0%, 니켈카드뮴전지는 45.3%, 니켈수소 전지는 22.7%, 산화은 전지는 36.0%에 그쳤다. 글로벌 폐배터리 원료 발생량 전망이 위의 그래프와 같을 것을 고려할 때 기업들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U 배터리 규정이 다가온다
폐배터리 재활용은 EU 배터리 규정 때문에도 매우 중요해졌다. 사실상 기업들이 폐배터리 재활용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가 폐배터리 원료 발생량의 증가보다는 EU 배터리 규정 때문일 것이다.
EU 배터리 규정은 2023년 7월 공식 저널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배터리에는 휴대용 배터리, 운송 수단 배터리, 산업용 배터리, 전기자동차 배터리까지 여러 카테고리의 배터리가 포함된다. 해당 규정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며 이에 맞게 중간 시점별로 달성해야 할 순차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자료 4. EU 배터리 규정]
출처: SK 에코플랜트 뉴스룸
1. 2024년 8월부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 성능 및 내구성 요구사항, 적합성 평가 절차와 시스템 운영자 의무에 대한 규정
2. 2025년 2월부터 전기차 배터리 탄소발자국 요구사항
3. 2025년 8월부터 배터리 공급망 실사, 폐배터리 관리 요구사항
이렇게 중간목표들을 EU 시장에 배터리를 판매하는 산업자들이라면 달성해야 한다. 중요한 기준들을 살펴보자.
탄소발자국 규정
여기서 탄소발자국 규정은 모든 배터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단, 전기자동차 배터리에는 적용되며 탄소발자국 규정 강제 시기도 가장 빠르다. 배터리 탄소발자국 선정 결과 선언은 2025년 2월, 배터리 성능 등급 라벨링 규정은 2026년 8월, 배터리 최대 탄소발자국 허용량 적용은 2028년 2월이다.
또한 신기한 점은 전기차 배터리의 탄소발자국 계산은 배터리 생산 회사에 국한하여 하지 않는다. 생산 국가가 전체적으로 어떤 에너지 구조를 가지는지에 기반한 계산법을 활용한다. EU는 계산 결과에 따라 시장 판매를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급망 실사, 폐배터리 재활용
공급망 실사에 대한 부분은 전체적인 이행 및 유지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기준이다. 배터리 제조사, 수입 및 유통회사, 최종 사용회사, 폐배터리 처리 회사, 재활용 회사는 배터리 공급망 실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정기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검증 대상 기관에는 협력사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에 꽤 까다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준비도 미리 해야 할 것이다. 실사가 임박한 한 달 전에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인 것으로 판단된다.
폐배터리 재활용은 핵심 원자재의 가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기업은 배터리 모델별, 생산 공장별로 배터리 생산 폐기물 또는 폐배터리로부터 추출한 코발트, 리튬, 니켈 사용량 정보를 명세하고 관리하고 있어야 한다. 제조사들에게 제시한 재활용 목표치는 2031년 8월 코발트 16%, 리튬 6%, 니켈 6%다. 2036년 8월에는 코발트 26%, 리튬 12%, 니켈 15%로 상승한다.
사실상 EU의 배터리 규정 중에서도 폐배터리 재활용의 목적성이 가장 뚜렷해 보이는데, EU는 해당 규정을 통해 희귀 광물의 재활용률을 높여 배터리 시장에서 이점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EU의 시장에서 풀리는 배터리들이 해당 규제를 받게 되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내수 경제다.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희귀 원료를 재활용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자동차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업황이 좋아지는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온실가스 배출 규정도 발효한다
EU는 배터리 규정뿐만 아니라 올해 배기가스 규정인 ‘유로7’도 발효한다. 유로7은 2025년부터 자동차 배기가스의 오염 물질 배출량을 지난 2021년 기준치 대비 15% 감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업계가 이 규정을 충족하려면 올해 전기차 판매 비중을 4대 당 1대 수준까지 높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르노의 연구에 따르면, EU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배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전체 자동차 시장의 20~22%에 도달해야 하지만 현재는 13.1% 수준에 불과하다.
배기가스 배출량 초과치에 대해선 그램당 95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벌금 규모에 대해 르노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최대 130억 유로(약 19조 원)의 벌금을 물게 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HSBC는 벌금 규모를 51억 유로(약 7조 6,000억 원) 정도로 전망한 바 있다.
전기차 판매 의무화는 입장 엇갈려
유럽 내에서는 전기차 판매 의무화를 진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여럿 존재한다. 영국이 이에 해당하는데 지난해 영국 정부는 연내 완성차 업체들의 신차 판매량 중 최소 22% 이상을 순수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수립, 전기차 의무 판매량 규정을 도입한 바 있다.
규정에 따르면 올해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승용차 판매의 22%, 밴 판매의 10%를 전기차로 충당해야 한다.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판매 건당 1만 5,000파운드(약 2,70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영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벌금을 피하기 위해 필요 판매 대수를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EV의 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 동시에 영국의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 수요가 충분하지 않고 운전자들의 전기차 전환을 위한 혜택이 더 필요하다며 정부에 규제 완화를 촉구해 왔다.
한편, 2023년 말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가 폐지된 독일에서는 전기차 판매가 급감했다. 지난해 독일 내 신규 EV 등록 대수는 전년 대비 4분의 1 이상 감소한 38만 609대로 집계됐다. 2024년 신규 등록 차량의 13.5%에 해당하는 규모다. 스웨덴, 프랑스, 아일랜드 등의 시장에서도 보조금 삭감과 저렴한 전기차 모델 부족으로 판매량이 저조했다.
이로 인해 영국, 독일, 프랑스 중에서는 친환경 규제의 시행을 일부 늦춰줄 것을 이야기한 국가도 있으며, 여러 규제를 충분히 이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국가들도 존재하는 등 입장이 산재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럽이 친환경에 진심인 이유
유럽이 새해부터 강력한 규제를 들고 산업계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이는데, 국제 정세에 다소 반하는 움직임으로도 분석된다. 한편으론 유럽의 내수 경기가 둔화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친환경에 진심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유럽 및 러시아가 교류하는 각종 비친환경 사업에 대한 프레임 역할을 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유럽의 국가 중 하나인 영국에는 세계 2위 석유 기업인 BP가 존재하며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보유한 에너지 강국이다. 화석연료의 철폐는 유럽 및 러시아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기에 친환경 사업을 앞에서 하고 뒤로는 화석연료 사업을 이어가려는 계획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유럽연합의 이런 친환경 기조는 환경오염에 의해 큰 위기를 체감하고 이를 변혁하려는 시도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발 빠른 성장을 이룩했지만, 이 과정에서 심각한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을 겪었고, 독일은 한때 원자력 강국이었으나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에 의해 큰 피해를 보고 탈원전에 나선 바 있다.
배터리 규제를 기회로 삼아야
남다른 경험에 의한 산업계 변혁을 꾀하는 유럽연합과 달리 우리나라는 수치상으로 바라봤을 때 아직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환경부가 작년 말 기준으로 폐배터리 반납 의무가 있는 전기차 1만 4천317대를 조사한 결과, 수출된 차량(1만 2천272대)을 제외한 2천99대 중에서 실제로 배터리를 반납한 차량은 1천317대에 그쳐, 반납률이 62.7%에 불과했다. 나머지 782대 중에서도 연구용이나 화재로 소실되어 배터리 반납이 불가능한 차량을 제외하면, 411대의 폐배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반납되지 않았다.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잡아야 하는 시장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배터리의 핵심 물질인 희귀 광물을 생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는 중국의 경우 최근 중국의 리튬 매장량이 세계 6위에서 2위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중국지질조사국은 "조사·평가 결과 중국의 염호형 리튬 증가량은 1천400만t으로 남미 리튬 삼각지대와 미국 서부에 이어 세계 3대 염호형 리튬 자원 기지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리튬이 매장되어 있는 나라고, 테슬라는 심지어 리튬 정제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운용하려 하고 있다.
거시 경제의 흐름 속에서 틈새 공략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가져가야 하는 만큼, 우리나라가 EU 배터리 규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기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배터리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이차전지, 리튬의 시대가 가고 마그네슘의 시대가 올 것인가?", 26기 강민석,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644
2. "전기차 배터리도 핸드폰처럼? 탈부착 가능한 전기차", 26기 김대건,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631
참고문헌
아직은 배터리 사용이 친환경적이지 않다
1) 박상우, "전기차 폐배터리 대방출 시대, 대책이 없다", Goodnews, 2023.09.27, https://www.good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426362
아직은 배터리 사용이 친환경적이지 않다
1) 김희영,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설비 절반이 개점휴업? 안정적인 폐배터리 수급 방안은?", SK 에코프랜트 뉴스룸, 2024.04.20, https://news.skecoplant.com/plant-tomorrow/15551/
EU 배터리 규정이 다가온다
1) 오지헌, "EU, 신규 배터리 규정으로 전 세계 배터리 판을 흔들다.", SK에코플랜트 뉴스룸, 2023.09.15, https://news.skecoplant.com/plant-tomorrow/13160/
온실가스 배출 규정도 발효한다
1) 김연지, "영국, 유럽 최대 EV 시장 등극…EV 판매 의무화 영향", ESG 경제, 2025.01.07, https://www.esg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9521
EU 배터리 규제를 기회로 삼아야
1) 조성현, "전기차 폐배터리 수거율 저조…안전·자원 낭비 우려 확산", 청년일보, 2024.09.16, https://www.youthdaily.co.kr/news/article.html?no=16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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