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사이드,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2기 최정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공격하면서 양국의 전쟁이 시작됐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을 “지구상에서 미국과 나토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군대”라고 평가했으며, 세계 각국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power, GFP) 집계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세계 군사력 순위 2위, 우크라이나는 25위로,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양국의 병력 차이는 심했다. 그러나 결연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반격과 더불어 서방 국가의 지원이 계속되면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자료 1.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출처 : ohmynews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여러 곳에서 막대한 피해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세계적 위기의 장본인으로 떠오른 가운데 지구의 환경도 파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에코사이드]
‘에코사이드(ecocide)’ 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와 집단학살을 의미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를 합쳐서 만든 단어로 자연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하는 행위, 즉 ‘생태학살’을 의미한다. 공장에서 배출하는 폐수, 바다에 방치되는 어망, 무분별한 연안 개발 등 인간의 편의를 위해 한 일들이 환경에 큰 해를 가하는 일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전쟁으로 말미암은 환경적 피해 역시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주면서 에코사이드 사례로 남는다.
⦁걸프전 원유 유출 사건
1990년 이라크, 쿠웨이트 사이에 전개된 전쟁 도중 발생한 ‘걸프전 원유 유출 사건’은 세계 최악의 기름 유출 사건이자 대표적인 에코사이드로 손꼽힌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면서 해안에 있는 유전을 고의로 폭파하여 페르시아만의 수백 군데의 유정과 원유 저장시설을 파괴한 사건으로, 이 때문에 최소 1억 6,000만 갤런에서 최대 4억 2,000만 갤런에 달하는 원유가 페르시아만에 유출되었다. 이 사고로 페르시아만 주변 사막과 해변은 심각하게 오염되었으며, 해양생태계는 큰 피해를 보았다. 한미 연구진이 쿠웨이트 사막에 방치된 걸프전 유출 원유를 분석해 30년간 진행된 변화 양상을 연구한 결과 사막의 높은 표면 온도에 따른 기화 현상과 광분해로 산화되면서 독성을 지닌 환경오염 물질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막의 건조한 환경에서는 미생물 분해 등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미미하였으나, 해양 유출 사고의 피해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한다. 한 번 유출된 기름은 생물학적 분해가 되지 않으며, 증발·용해·침전 또한 되지 않아 해양 환경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료 2.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출처 : 해양수산부 공식 블로그
⦁베트남 전쟁 고엽제 사건
1961년부터 1973년 베트남전쟁 당시 발생한 고엽제 사건 역시 전쟁으로 발생한 에코사이드이다. 전쟁 당시 미국은 상대의 잠복처를 없애고 전투를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작전 지역에 고엽제를 뿌렸다. 1964년 7월부터 1970년 10월까지 7년이 넘도록 베트남 전 국토 면적의 18%에 달하는 지역에 약 1,200만 갤런의 ‘오렌지제’라는 고엽제를 살포하였다. 베트남에서 사용된 고엽제는 저장 용기의 색깔에 따라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화이트, 에이전트 블루, 에이전트 퍼플, 에이전트 핑크, 에이전트 그린의 6가지로 분리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많이 살포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오렌지제)는 그 피해도 가장 크다. 오렌지제는 2,4,5-T와 2,4-D라는 제초제를 섞어서 만든 합성 물질인데, 2,4,5-T에 TCDD라는 다이옥신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다이옥신은 극히 적은 양으로도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맹독성 물질로 발암성 물질 중 가장 강력한 독성으로 알려졌으며, 하천 오염으로 시작해 먹이사슬을 통해 생태계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
[자료 3. 에이전트 오렌지의 화학 구조식]
출처 : 글로벌이코노믹
베트남 전쟁 고엽제 사건으로 베트남 전체 산림의 5분의 1 이상이 사라지고 지역적인 기후변화가 나타났다. 인명피해 역시 심각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를 직접 뿌렸거나 고엽제가 뿌려진 지역에서 작전한 군인 중 암에 걸리거나 간 또는 신경질환을 앓는 사람, 부인의 유산 또는 기형아 출산, 피부병에 걸리는 경우가 빈번히 나타났다. 다이옥신에 오염되면 인체의 유전자 환경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어 오랜 잠복기 후 5년에서 20년 후에야 인체에 대한 독성이 드러난다. 실제로 베트남에서는 10년이 지난 후 머리 둘에 몸통이 하나 달린 기형아가 출생하기도 하였고, 각종 암과 피부병에 시달리는 등 베트남 주민 사이에서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환경에 큰 피해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환경단체 `에코액션`은 현지 오염 상태를 파악 중 키이우와 하르키우, 루한스크에서 오염 장소를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환경부에 따르면 서부 도시 테르노필에서는 비료 저장고가 파괴된 후 인근 강물의 암모니아와 질산염 농도가 정상치보다 각각 163배, 50배 높게 검출됐다. 중화학 공업지대인 동부 전선에서는 지하수 오염과 유독가스 배출 우려도 있었으며, 폭격으로 인한 폭발, 화재 등으로 중금속이나 유독가스, 석면 등 오염물질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인접국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군용 차량이 내뿜는 매연도 상당했으며, 우크라이나 저수지 수백 곳에 광공업 활동에 따른 폐수 60억 톤이 있는데, 이들 시설이 파괴돼 폐수가 인근 토양과 강을 오염시킬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 11월, 우크라이나는 UN COP27 기후정상회의에서 러시아가 전쟁으로 기후 위기를 더욱 심화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산림과 농경지에서 발생한 화재, 저장고 공격으로 불에 탄 원유 등을 포함해 러시아가 전쟁으로 3,3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자연보호 구역에 군사 기지를 만들었으며, 멸종 위기종을 포함해 600마리의 동물과 750종의 식물이 위험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이후 흑해에서 120마리의 돌고래가 숨진 것 또한 전쟁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자료 4. 더 타임스에 실린 흑해 돌고래 폐사 관련 기사]
출처 : THE TIMES
지중해 흑해고래류 보호 협정 (ACCOBAMS)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흑해 연안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들이 큰 위협에 놓였다는 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시작 후 불가리아, 루마니아, 터키, 우크라이나 등 흑해 접경 국가 해안에 서식하던 돌고래 700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주원인은 전쟁 소음으로 추정했다. 돌고래는 음파와 소리 반향에 의존해 주변을 탐색하고 동료와 의사소통하며 방향감각을 유지한다. 따라서 음파 장비에서 내보내는 저주파 신호를 비롯한 전쟁 소음으로 돌고래는 쉽게 교란되고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거나 방향감각을 잃고 위험한 곳에 돌진해 죽을 수 있다. 돌고래 사체에서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해당 분석을 뒷받침했다. 지중해와 흑해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다양한 돌고래 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돌고래뿐 아니라 해당 지역 연안에 서식하는 대부분 해양 생물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어 전쟁 피해의 우려가 커졌지만, 해당 지역 곳곳에 설치된 지뢰 탓에 관련 조사가 쉽지 않다.
지난 11월에는 방사성 무기인 ‘더티밤’이 언급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더티밤은 재래식 폭탄에 핵 물질을 조합한 폭탄으로, 핵폭탄보다 위력은 약하지만 광범위한 방사능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비인도적 무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더티밤(dirty bomb)’을 사용을 준비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규모 핵전쟁 훈련인 '그롬(Grom)'을 실시하겠다고 통보했다. 러시아는 지난 10월 정례 핵 훈련을 했으며, 러시아 국방부는 이스칸데르 전술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장면까지 공개하는 등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과도한 군사비 지출과 무기 판매로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네덜란드 지속가능성 싱크탱크 TNI(Transnational Institute)에 따르면 군용 인프라와 장비는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고 있는데, 2017년 발표된 자료에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민간 항공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2.5%인 것에 비해 군사와 무기 산업은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사비용은 1990년대 후반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와 함께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2021년에는 한화로 약 2,711조 원을 넘겼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격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TNI 연구진은 연간 군사비용의 5%만 삭감해도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는 비용을 모두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군사 기지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거나, 군사 장비 일부를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교체한다고 밝혔으나, 군사 작전과 수송 장비에 사용할 적절한 대체 연료를 찾지 못했으며, 탄소 감축 목표가 모호하거나 비현실적인 목표 수치를 내세우는 나라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 후]
환경·보건 전문가들의 이런 오염을 정화하는 데 수년이 걸리고 암과 호흡기 질환 발병, 아동 발달 지연 위험 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환경부는 조사관 약 100명을 동원해 오염 우려 지역의 토양과 물 표본을 수집하고 있지만, 교전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많아 전체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때문에 우리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4,900만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과 동시에 이 책임은 러시아에 있다고 겨냥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침공 이후 산림 파괴, 유독가스 배출, 수도시설 파괴 등 3,700만 유로(약 505억 3,700만 원) 규모의 '환경 범죄'에 대한 2천 건의 증거를 수집했으며 이를 토대로 러시아에 보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자료 5. 불길이 치솟는 우크라이나 제철소]
출처 : 경향신문
한편, 이번 전쟁으로 유럽은 새로운 에너지 공급처를 찾고 있다. 그동안 EU는 천연가스 수입의 40%를 러시아산으로 충당했을 정도로 러시아에 에너지 의존도가 높았다. 침략국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위해 유럽은 러시아의 석탄 수입은 막았고, 석유와 천연가스 금수 조치도 언급되었다. 지난 5월 3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아프리카 등 수입처 다변화로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올해 안에 3분의 2가량 줄일 것이라고 했다.
전쟁으로 우리는 여러 크고 작은 변화를 맞았으며, 인명피해와 환경 피해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피해가 지속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전쟁만큼 환경을 해치는 활동은 없다.”라며 러시아를 성토했다.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희생과 피해가 오가는 가운데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시간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신재생에너지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20기 김지원, 조현선, 21기 박지원, 오화종, 정재혁, 정형인,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623
2. "러-우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에너지 수입 의존도, 어떻게 낮추어야 할까?", 19기 김수정, 20기 최예지, 21기 김채윤, 이태환, 오서영,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617
참고문헌
1) 김홍범, “비극의 70일, 무슨 일 벌어졌나 우크라이나 전쟁 A to Z”, 중앙일보, 2022.05.04., https://www.joongang.co.kr/atoz/8
[에코사이드]
1) 강석기, “고엽제 대명사 ‘에이전트 오렌지’는 어떤 물질?”, 동아사이언스, 2011.05.27.,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307902
2)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걸프전이 남긴 사막 유출 원유, 30년의 세월을 읽다”, https://www.nst.re.kr/www/selectBbsNttView.do?key=62&bbsNo=13&nttNo=12415
3) 김윤하, “에코사이드, 전쟁으로 바다가 파괴되고 있다!”, 해양수산부, 2022.07.22., https://blog.naver.com/koreamof/222820557834
4) 이재림, “30년 전 걸프전 때 유출 원유 분석…독성물질 발생 확인”, 연합뉴스, 2019.04.09., https://www.yna.co.kr/view/AKR20190409043200063
5) 장두성,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 심각”, 중앙일보, 1984.05.14.,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65122
6) (X)기업의 사회적책임, “베트남 고엽제 사건”, 환경운동연합, 2001.08.13., http://kfem.or.kr/?p=18358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1) 남예진, “군사비 지출, 기후위기 해결 비용보다 30배 많다”, 뉴스펭귄, 2022.11.22.,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46
2) 이지민, “흑해서 돌고래 떼죽음…“러 군함 수중 음파 탐지기 탓”“, 국민일보, 2022.10.27.,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7607571&code=61131611&cp=nv
3) 이후림, “러시아-우크라 전쟁 비극, 흑해 접경 돌고래 700마리 폐사”, 뉴스펭귄, 2022.11.07.,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25
4) 장희준, “[뉴스속 용어] 美·러 협상 재개한 新전략무기감축협정, 뉴스타트”, 아시아경제, 2022.11.09., https://view.asiae.co.kr/article/2022110915574309738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 후]
1) 남예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환경 피해 2200건… "러시아에 책임 물을 것"”, 뉴스펭귄, 2022.11.16.,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02
2) 신정연, “전쟁터 된 우크라이나‥환경 피해 수십 년 갈 수도”, MBC NEWS, 2022.04.25., https://imnews.imbc.com/news/2022/world/article/6362560_35680.html
3) 임선영, “시신 410구 쏟아진 '부차 학살'…미·유럽 "러 전쟁범죄 책임져야", 중앙일보, 2022.04.0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0827#home
4) 장성주, “러시아 전쟁의 또다른 피해자…지구 환경도 파괴”, 노컷뉴스, 2022.11.15., https://www.nocutnews.co.kr/news/5849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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