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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

by R.E.F. 26기 이서진 2025. 6. 23.

기후위기 시대,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6기 이서진

 

기후 소설이 많아진 문학 시장

판타지 소설, 추리 소설, 로맨스 소설. ‘소설’이라는 단어 앞에 장르가 붙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장르 소설이 우리의 서재를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기후 소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기후위기 담론이 그러하듯,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영미권에서 이런 흐름이 시작됐다. 영국의 지넷 윈터슨이 쓴 <돌의 신들>(The Stone Gods, 2007년, 국내 미출간)은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지구와 흡사한 가상 행성 ‘오버스’(Orbus)를 다룬다. 역시 영국의 이언 매큐언이 쓴 <솔라>(2010년, 2018년 국내 출간)는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한 물리학자가 주인공이다.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리치가 쓴 <승산 없는 미래>(Odds Against Tomorrow, 2013년, 국내 미출간)에선 가까운 미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기후재난에 대비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계산하는 젊은 수학자가 등장한다. 이 수학자의 계산이 거의 끝나갈 무렵 뉴욕 맨해튼에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제로 덮쳐온다.

[자료 1.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

출처: 김초엽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 소설의 흐름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소설가 김기창은 2021년 단편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에 본격적인 기후 소설을 표방하는 작품을 냈다. 한국 과학소설계의 총아로 떠오른 김초엽도 노출되면 죽음에 이르는 먼지 ‘더스트’로 멸종한 미래 인류를 다룬 <지구 끝의 온실>을 2021년 펴냈다. 국내에서도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조만간 본격적으로 나올 전망이다. 문예지 <월간문학>은 2022년 10월호에서 ‘문학과 재난대응’을 특별기획으로 다뤘다. 이 주제로 발표한 이들은 “감염병과 기후변화라는 엄중한 상황에 맞닥뜨린 한국문학이 실천과 참여, 상상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 소설의 등장

그렇다면 기후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나 재앙 그리고 그에 적응하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 ‘클라이파이(Cli-Fi, 기후 소설)’라는 장르는 미국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댄 블룸이 2007년 기후(climate)와 소설(fiction)을 결합해 처음 만들었다. 주로 SF와 교집합으로 그려지는 클라이파이에는 청정에너지로 구동하는 녹색사회 중심의 긍정적 미래상인 ‘솔라펑크(solar-funk)’도 포함된다.

클라이파이는 기후 위기 이후 멸망한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 흔히 넓은 의미의 과학소설(SF)로 묶인다. 과학소설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사변’이다. 경험이 아닌, 생각만으로 사물이나 현실의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사고실험을 이른다. 이런 작업은 과학소설의 수식으로 잘못 붙곤 하는 ‘공상’이 아닌, 과학적 추론에 따른 것이다. 기후소설의 사고실험은 기후위기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측하려는 시도이면서 기후위기를 막을 담론 확산의 매개가 된다.

물론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멸망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심완선 SF 평론가는 “이전에는 재해 원인을 명확히 찾지 못한 채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은 ‘인류 탓’이라는 것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행위와 어리석음으로 지구가 멸망했고, 그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클라이파이가 단순히 종말만을 다루는 비관적 이야기는 아니다. 이후에 인간이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지,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통찰이 담긴 것이 기후 소설의 특징이다.

 

기후 소설의 영향력

그렇다면 기후 소설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 안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문학이 가지는 힘을 생각하면 기후 소설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문학을 읽는 것은 인간 마음에 실제 영향을 미친다. 세계관에 변화를 가져오고,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며,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바꾼다. 인지심리학자 레이먼드 마와 키스 오틀리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자주 읽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남의 이야기에 쉽게 공명하며 남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줄 안다. 소설 읽기가 공감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평소에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고 느꼈던 주제라도, 문학을 통해서는 거부감 없이 ‘나’의 영역을 넓혀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특히,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일 때 학습 효과가 더 높다. 데보라 프렌티스 등의 연구에 따르면 프린스턴대 학생들은 이야기의 무대가 프린스턴대가 아니라 예일대일 때 더 많은 것을 기억했다. 일상과 직접 연관이 없을수록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익숙지 않은 정보를 손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통로이다.

이처럼 기후 소설은 기후위기라는 의제에 접근하고 환경파괴의 영향을 개인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행동을 촉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기후 소설은 기후위기가 초래한 현재의 위기를 재현하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증언하는 한편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반성 없는 현재가 디스토피아로 이어진다는 어두운 경고에도 낙관적 미래를 전망함으로써 현재 시점에서 기후행동과 같은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기후 소설은 기후위기와 개인 삶 간의 거리를 좁히고 새로운 실천을 촉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기후 소설이 나아가야 할 길

기후 위기가 빈부격차에 따라 그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고, 개인의 이익 때문에 기후 위기 음모론까지 떠돌며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되는 오늘날이다. 기후학자들이 아무리 위기를 부르짖어도, 대중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 기후 위기 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기후 소설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 문학은 남의 이야기를 나와 동일시하게 만들어 주고, 멀리 떨어져 있는 주제라 생각했던 기후위기를 독자와 연관 짓는다. 이기주의와 냉소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이타심을 길러주는 문학은 막대한 예산 투자도 필요 없는 최고의 계몽이 될 수 있다.

요즘 새로 읽을 책을 찾고 있었다면, 기후 소설을 도전해 보길 추천한다. 조금은 허황되고 조금은 바보 같고 조금은 오그라들지라도, 그런 이야기가 때로는 마음을 움직인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우리는 기후변화에 속고 있을까?", 24기 이지혜, 25기 송현승, 이예영, 26기 이서진,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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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후변화에 속고 있을까?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4기 이지혜, 25기 송현승, 이예영, 26기 이서진  [2024 미국 대선, 그리고 환경 정책] [자료 1. 2024 대통령 토론회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

renewableenergyfollowers.org

2. "지구 마감 4년 264일 전! 이제는 진짜 위기다", 25기 노정연,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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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마감 4년 264일 전! 이제는 진짜 위기다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5기 노정연 남산타워로 향하는 길, 의문의 시계를 만나다[자료 1. 남산타워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기후위기시계 ]출처 :

renewableenergyfollowers.org


참고문헌

[기후 소설이 많아진 문학 시장]

1)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자이언트북스, 2021.

2) 박기용, “소설인가 현실인가…‘장르’로 정착한 기후소설이 온다”, 한겨레21, 2022. 10. 25,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52771.html

2) 조수빈, “문학적 상상력으로 미리 본 기후 위기 시대”, 한경ESG, 2023. 04. 06,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3291369i

[기후 소설의 영향력]

1) 장은수, “문학 없으면 공감 능력 떨어져 시민 사회 위기 온다”, 중앙일보, 2019. 12. 2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663455

2) 정민경·이순욱, “기후소설의 전략 - 위기의 조명과 디스토피아의 증언 -.”, 영주어문학회 54, 317-34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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