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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저널기사

2번의 대형 원전 사고, 끝나지 않은 재앙

by R.E.F. 10기 이경호 2016. 12. 29.

2번의 대형 원전 사고, 끝나지 않은 재앙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현대사회는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5년 밖에 지나지 않은 현재, 이 두려움은 언론의 보도 빈도가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묻혀버렸다. 많은 이들이 방사능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직접 경험한 사례가 드문 유전자 변형 등의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영향력이 큰 피폭으로 인한 피해가 바로 드러나지 않고 잠복기를 가진 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피해 측정은 이른 추산일 것이다. 원전에 대한 안전성 문제를 재고하기 위해 역사상에서 2번 밖에 없었던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에서 가장 높은 7등급 받았던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사고과정과 현재 상황을 중점적으로 조사하여 알리고자 한다.

 [사진1.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기준]

출처-http://sostv.net/index.php/mag/2010-05-25-14-59-33/survivors151-200/513-surv-178/7506-surv-178-3.html

 

후쿠시마 원전사고 과정

 후쿠시마 후타바군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는 2011311일 일본 북동부 지방을 강타한 규모 9.0의 대지진으로 인해 원자로 1~3호기의 전원이 멈추면서 시작되었다. 쓰나미로 인해 전원이 중단되면서 원자로를 식혀 주는 긴급 노심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췄고, 다음 날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후 이틀 뒤 3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2호기와 4호기의 수소폭발과 폐연료봉 냉각보관 수조에 화재가 발생하는 등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대량의 기체가 외부로 누출됐다. 2호기에서 폭발이 발생했을 때에도 70명 정도의 인원이 피폭의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해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방사선량은 400mSv15분 이상 노출될 경우 인명 피해를 줄 수 있는 정도의 양이었다. 그 이후 5호기와 6호기의 냉각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12호기의 전력 복구 작업이 완료되면서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고장 난 냉각장치를 대신해 뿌렸던 바닷물이 방사성물질을 머금고 오염된 채 바다에 그대로 누출되면서 고방사성 액체가 문제를 일으켰다. 이는 인근 해양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사고 발생 당시 도쿄전력의 임원들은 현장의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으며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사장은 여행 중으로 인해 당시 부재중이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70명의 복구 작업 인원과는 달리 원자력안전보안원 직원들은 본인들의 안전을 우려해 현장을 탈출하여 사고 현장 자료 수집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추가로 파견한 직원 4명 또한 적극적으로 자료를 조사하지 않고 현장을 빠져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70명의 위험을 감수한 복구 작업이 없었다면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에서는 요오드와 세슘 외에 란타넘, 바륨, 코발트 등과 같은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이 같은 물질은 자연 상태에서 매우 희귀한 것들로 핵 연료봉 내 우라늄이 핵분열을 일으킬 때 생기는 핵분열 생성물이다. 원전부지 내 토양에서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 검출되었으며 후쿠시마 현의 토양에서는 골수암을 일으키는 스트론튬이 검출되기도 했다. 바다로 흘러들어간 방사성물질들은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켰고 사고 직후 후쿠시마 인근의 해양은 적정 방사능 농도의 50% 이상까지 치솟았다. 대기 중으로 방출된 방사성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돼 미국, 유럽,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검출됐다. 국내 대기에서는 제논(133Xe), 방사성 요오드 및 세슘이 발견되었고 대전과 대구에서는 방사성 은이 새로 검출되기도 했다. 전국에 내린 비에서는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됐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전국 12개 지방측정소에서 공기 중 방사성물질을 검사한 결과, 모든 지역에서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됐다. 그러나 KINS는 인체에는 영향이 없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사진2. 일본지역 피해를 나타낸 지도]

출처-인포그래픽&중앙일보 박경민 기자 

 20158월 자료를 기준으로, 후쿠시마 현에서만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대피하여 살고 있다. 피난민들은 자신들의 집, 가족, 직장 등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대피하기에 급급했다. 다른 지역에 갈 곳이 없거나 개인 사정이 있어 피난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 직장문제로 아버지만 남겨두고 어머니와 자식들은 떨어져서 사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도 안전성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후쿠시마 지역의 농수산물 수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과정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1986426일에 발생했다. 사고는 발전소가 정전될 상황을 대비하여 비상전력공급체계 점검실험과정 중에 발생했다.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 공급을 위해서는 정상적인 전력 공급이 중단되어도 비상전력인 디젤발전기가 전력을 공급하게 설계가 되어있다. 디젤발전기가 가동되는 데에는 1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 시간 동안의 전력을 증기터빈의 관성력으로 메울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사건 당일 새벽에 원자로 출력을 낮추면서 제어봉에 무리가 생겼고 원자로의 온도가 불안정해졌다. 냉각펌프에 전달되는 전력량이 감소하면서 노심의 냉각수 양이 줄어들었다. 노심은 과열되어 수증기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실험 시작 1분 만에 첫 폭발이 발생했다. 이 폭발로 원자로의 지붕이 날아가고 내부에 있던 방사능 물질들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이어서 수소폭발 혹은 핵폭발로 추정되는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 다량의 핵물질이 유출되었다. 폭발로 인한 불길은 계속 되었고 새벽 5시 경에 진화에 성공한 듯 했으나 낮에 다시 불길이 치솟았다. 군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납, 모래, 자갈 등의 무거운 물질들을 5000톤가량 사고 현장에 투하했다. 과량 투하한 물질들 때문에 원자로의 와해가 우려되어 콘크리트 구조물로 원자로를 덮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방사성물질들이 대기 중으로 유출된 후였다.

[사진3. 체르노빌 원전사고 개요]

출처-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KcnL&articleno=5718824&categoryId=621797&regdt=20131116034644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

 소련 정부 발표에 따르면 당시 실험을 행하고 있던 2명의 연구원은 폭발로 인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며 소방대원 및 발전소 직원 등 28명이 사고 후 3~4개월 사이에 사망했다. 그 이후에도 19명이 추가로 사망하였고 총 56명이 이 사고로 인해 사망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화재 진압 과정에 동원된 600명의 자체 소방대와 다른 인부 등 총 3400명이 사고 직후의 고도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갑상선암 이외에도 피폭 주변 지역의 주민은 백혈병, 유방암 등의 증상이 발생했다. 2000426, 사고 발생 14주년 추모식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 사고 처리 종사자 86만 명 중, 55천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국내(인구 5천만 명) 방사능에 노출된 342만 명 중, 작업원은 86.9%가 병에 걸렸다.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성물질의 직접적 누출은 열흘 동안 계속되었다. 사고 당시 발생한 방사능 낙진은 체르노빌 주변의 15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영역을 방사능으로 오염시켰다. 당시 풍향 때문에 낙진의 70%는 벨라루스에 집중되었다. 사건 당시 벨라루스 국토의 22%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으며, 이는 2005년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벨라루스 정부는 2016년에도 여전히 국토의 16%가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방사능에 따른 벨라루스의 경제적 피해는 약 2350억 달러로, 이는 1997년 당시의 벨라루스 총 생산의 10배 이상의 수치이다. 사고 이후 소련의 광범한 지역에서 주요 식품의 방사성물질 오염이 확인되었는데, 유럽 국가들에서까지 특히 큰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은 우유의 오염이었다. 원자로에서 누출된 방사성 요오드는 식물 표면에 들러붙었다가 이를 뜯어먹은 소의 내부로 들어가 전량이 소의 창자에 흡수된 뒤 하루가 안 되어 소의 갑상선과 우유 속으로 퍼졌다. 우유의 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그 우유를 먹는 아이들에게로 전해졌다. 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주변 지역의 0-17세 사이의 소아 중에서 5000건 가량의 소아 갑상선암이 보고되었으며 앞으로 50년간 5,000~45,000건 정도의 사례가 더 보고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현장은 철골로 원전을 지탱하고 이를 콘크리트 벽으로 덮여있었다. 녹은 연료를 꺼내어 처리하면 그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연료의 농도가 진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처리가 어렵다. 콘크리트 벽에 금이 가면서 방사능물질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달 강철 돔을 완공하여 100년간의 방사능물질 유출을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4. 2016년 11월 29일에 완성된 체르노빌 원전 강철 돔]

출처-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120479111#01.13055445.1

 가장 잘 알려진 대형원전사고인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안타깝게도 책임자들의 실수로 인해 발생하거나 그 피해가 커진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과 국가에게 돌아갔.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전이 이용되는 이유는 원전을 대체할 만한 고효율의 에너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에너지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원활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서는 원전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원전 옹호론자들은 원전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작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매우 작은 확률로 발생한 원전사고는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다. 이러한 끔찍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책임자들의 책임감을 고취시켜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필렬. (1996) 원전사고의 실상-과학기술의 허상 : 체르노빌 사고 10주년을 맞이하여.

이유진. (2011) 원전을 멈춰라 : 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 후쿠시마가 예언한 다음 원전은?

최예용, 이상홍, 백도명. (2011)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한국의 원전안전정책.

임종한. (2011) 체르노빌 사고 : 유럽지역의 노출수준과 건강영향

정주용. (2012)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의 미래.

한정숙. (2013) 체르노빌 원전 사고.

최종민. (2016) 조직화된 무책임을 통해 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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