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바르셀로나의 거리]
다들 태양광 선두주자라고 하면 흔히 서유럽의 몇몇 국가들과 미국을 떠올린다. 지중해의 해변, 부서지는 파도와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 그리고 그 아래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태양전지들. 실제로도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와 같은 에너지 선진국들은 진즉에 천연에너지로 눈을 돌린지 오래인 만큼, ‘태양광 에너지’라는 말에 이들을 떠올리는게 틀린 것도 아닐 듯 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정정하고 넘어가야겠다.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 중, 스페인의 태양광발전 산업은 실패했다는 평을 듣고있다. 왜? 스페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뜨거운 태양과 ‘정열’로 대표되는 그들의 문화일텐데? 실제로도 스페인은 태양광 발전 산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나라로 대변되는 스페인이 왜 태양광 산업에서 진즉에 몰락하고 말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 당시 스페인의 상황
우선 스페인의 태양광 산업이 위기를 맞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사실 스페인은 대부분이 상상하는대로 태양의 나라임과 동시에 여름에는 실제로 38~43도를 웃돌만큼 가히 살인적인 일사량을 자랑한다. 그런만큼 태양에너지에 대한 기대도 클 수 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한 기대에 편승하여 스페인 정부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들은 태양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고자 FIT(Feed In Tariff)라는 정부보조금을 지급하기에 이른다. 즉,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든든하게 뒷받침을 해줘야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국가 단위의 보조가 있어야만 급성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당시 스페인의 기존 에너지 산업은 석탄위주였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기조로도 석탄위주의 산업은 점점 하락세를 보이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후퇴하는 석탄산업을 대체하기 위해 전도유망한 에너지 자원을 찾을 필요성이 있었고, 스페인이 가진 지리적, 기후적 특성 상 여러 신재생에너지 중에서도 태양에너지가 채택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양에너지 산업으로 전환하기에도 스페인은 훌륭한 인프라를 갖고있는 상황이었기에 모든 것들이 자연의 섭리마냥 자연스레 흘러가리라 예상됐다.
[사진 2. 구엘 공원]
국가적인 투자금이 태양에너지에 유입되는 동안, 크고 작은 관련기업들이 우후죽순마냥 생겨나기 시작했고, 관련 주식들도 계속해서 상승세를 그렸다. 석탄을 채굴하던 작업장에는 태양열 발전소가 지어지기 시작했고, 도시 근처의 값싼 부지에는 태양광 발전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자신이 가진 농지를 팔아 태양광 패널을 구입했고 석탄 사업자들은 책상 위의 어질러진 물품을 버리듯 자신의 채석장을 팔아치웠다. 마치 정교한 시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듯, 석탄 산업은 지평선 너머 추락하는 태양과 같았고 태양에너지는 막연히 어마어마한 부를 제공해주리라고만 여겨졌다. 태양에너지를 향한 골드러시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마냥 불패의 신화를 써내려 갈 것만 같았고 스페인 국민들도, 정부도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는 단 한번의 패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다시는 그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 태양에너지의 몰락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없고, 당연한 것도 없다. 아무리 뜨거운 태양도 시간이 지나면 지평선 너머로 저물기 마련이고, 끝날 것 같지않던 더위도 겨울이 가까워 짐에 따라 옅어진다. 이를 대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해가 떠있는 동안 부지런히 밤을 준비해야하고,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위해 여름 내내 열과 성을 다해 추위를 대비해야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 태양을 닮은 탓일까. 그들은 투자하기만 했을 뿐, 그 다음 해야할 일들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
우선 당시에 생산된 태양열, 태양광 시설물들의 품질은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여전히 태양에너지가 기존의 에너지원만큼의 생산률을 보이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고 기술개발에 몰두한다. 이게 현재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가진 한계점이다. 지금도 그러할진데, 10년 전의 태양에너지 시설물이라면 말 할 것도 없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고, 변환효율도 떨어졌고, 완성도도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너무 많은 발전소들을 태양열 발전소로 바꿨고, 석탄 채굴에 능통한 채석장비들을 팔아치웠다. 이제껏 그들의 먹여살린 근간 산업인 석탄을 너무나도 쉽게 내팽개쳤고,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불가한 신산업에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사활을 걸어버렸다. 즉, 길고 오래가야 할 마라톤에 단거리 육상 훈련을 받은 선수가 참가한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된 코치라면, 자신의 단거리 선수가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선언했을 때, 그에 맞는 훈련을 시키거나, 혹은 아예 참가를 만류할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어떠했는가? 오히려 박수치며 등떠밀었다. 각종 지원금을 약속하고, 장밋빛 미래를 예견하면서 너무나도 쉽게 정부보조금을 지급했고, 너무 많은 부실기업들을 양산해냈다. 그리고 그러한 부실기업들은 무작정 관련 시설물들을 값싸게 들여왔고 자신의 몸집만 뻥튀기했으며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미 투자자들은 우루루 몰려들어 태양에너지 기업의 주식을 무작정 사들였다. 마치 적벽대전의 조조가 자신의 모든 전함을 쇠사슬로 묶어버렸듯, 스페인의 태양에너지 산업 또한 심각하리만큼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었고,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이 재앙으로 다가오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이처럼 강력한 결속이 그들 전부를 부의 천국으로 데려다 주리라 생각했다.
[사진 3. 바르셀로네타 해변 앞 도로]
조조의 백만대군은 절대 그들이 패배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아예 패배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배를 쇠사슬로 묶는 악수를 두면서도 전략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결과를 갖고 올지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무지했고, 과할만큼 안이했다. 그러다 제갈량의 화공(火攻)에 도미노가 무너지듯 몰살당했고 패배했다. 슬프게도 당시 스페인의 태양에너지 산업이 딱 그 모양이었다. 2007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을 덮쳤고, 이에 대한 여파는 3년 뒤 2010년에 이르러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로까지 번졌고 이는 결국 유럽의 경제위기를 가져왔다. 나라의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스페인의 태양에너지 산업에도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스페인은 더 이상 FIT에 지원해줄 자금이 남아있지 않았고, 애초에 그들이 약속했던 수혜금을 삭감하고 태양에너지 발전소 건설 수를 제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정부가 약속했던 장밋빛 미래와 FIT를 믿고 공격적 투자를 했던 사람들은 졸지에 고립무원에 서게 된 것이다. 자신의 농지를 팔아치운 농부들은 더 이상 경작할 땅이 없었고, 채석장비를 팔아치운 공장주는 더 이상 석탄을 채굴할 수 없었다. 고향을 떠나 도시를 향해 상경한 이들은 순식간에 갈 곳을 잃은 빈털털이가 되어버렸다. 공장과 가게는 문을 닫았고, 수천명의 근로자들은 일할 곳을 상실했으며, 외국 기업들과 은행들은 진행중이던 계약을 파기하거나 이미 완료된 계약마저도 이행하길 거부했다. 그렇다면 그간 스페인이 육성한 수많은 기업들이 다 파산해버렸단 말일까? 그만큼 그들은 경쟁력이 없었나? 대부분이 그러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의 제품으로 쓸만한 청정 에너지를 생산해내지 못했고 이를 인정하며 순순히 파산신고에 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태양에너지에 대한 온갖 환상들은 한 여름밤의 꿈보다도 더 허망하게 사라졌고, 스페인 국민들의 마음깊은 곳에는 생채기가 났다. 스페인의 정책예측은 골드러쉬에 눈이 멀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고, 정부의 태도와 발표만을 믿고 자신의 사활을 걸었던 수많은 기업들과 노동자들이 좌절했으며, 나아가 신재생에너지 국가로 도약하려던 그들의 꿈은 무참히 꺾였다. 그렇게 스페인의 태양에너지 정책은 실패로 끝을 맺었고, 현재에 와서도 많은 본보기가 되어 남아있다.
■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
우리 기자단의 성격이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있겠지만, 당장 개인의 성격으로 평가해보아도, 나는 항상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밝은 전망을 제시해왔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고, 무지한 이들에게 행복한 미래만을 심어왔다. 하지만 항상 그런 글을 쓸때면 마음 한 켠에는 스페인의 태양에너지 산업에 대한 몰락이 내 손가락을 경직시키곤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리라고 쓰는 건 다소 위험하지 않냐고, 모든 것들이 미래에 다 이뤄지리라 쓰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이냐고, 단순히 그냥 너의 소망을 투영하고만 있는 건 아니냐는 물음에 ‘언젠가는 좀 더 차가운 시선으로 신재생에너지를 바라보는 기사를 쓰겠다’고만 다짐해왔다.
여전히 난 신재생에너지 우호자이고, 이런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에 쓴 보약을 먹은 아이가 무슨 맛인지도 모를 사탕을 허겁지겁 입에 집어넣듯이, 무작정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체와 투자자들의 냉철한 시각 뿐만이 아니라 정부의 치밀한 정책예측도 수반되어야만 한다. 분명 신재생에너지는 정부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며, 반드시 개발해야만 하는 전 인류적 과제이지만, 그런만큼 조심스레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게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고, 아이가 잠들기 전 전래동화를 읽어주는 이유이며,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적벽의 조조는 패배했을지라도 스페인은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삼국지라는 역사를 통해 태양에너지 산업을 바라봤다면 말이다. 우리는 벌써 과거 세대가 실패한 두가지 사례를 알고있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의 미래에도 신중하고 냉철한 시각이 깃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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