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배출권 시장에 참여하는 이유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3기 김경훈, 24기 변지원, 24기 이지혜
[그동안 배출권거래제는 어떻게 운용되었나]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는 2015년 도입 이후 1차 계획기간(2015~17년), 2차 계획기간(2018~20년), 3차 계획기간(2021~25년)을 거치고 4차 계획기간(2026~30년)을 앞두고 있다. 초기의 1·2차 계획기간은 제도의 안착과 개선을 목표로 했다. 1차 계획 기간은 배출권거래제의 기초를 다지는 데 집중했으며, 2차 계획기간부터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기준을 보완했다.
[자료 1. 배출권 거래제 개요]
출처: 이슈보고서 21-23
대표적인 개선 사항으로는 배출권 총량 산정, 유상 할당 기준 설정, 벤치마크 할당 방식 도입 등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후 ‘제3차 계획기간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통해 배출권 할당 방식 고도화, 온실가스 실질 감축 유도, 시장 기능 확대 등의 전략을 수립하며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출권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에 미친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 7,960만 톤으로 2015년 대비 1.9% 감소하는 데 그쳤으며, 같은 기간산업 부문 배출량은 오히려 12.3% 증가했다.
[한국 배출권거래제의 한계점]
배출권거래제의 배출 허용 총량은 NDC의 감축 후 배출량에 따라 산정되기 때문에, 국가 감축 목표가 느슨하게 설정되면 배출 허용 총량도 따라서 늘어나게 되는 구조이다. 이는 지난 세 차례의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해 온 잉여배출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제1·2차 계획기간 동안 2,620만 톤, 제3차 계획기간 초기 2년간 3,922만 톤의 잉여배출권이 발생해 왔으며, 이는 그동안 배출 허용 총량이 느슨하게 설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30 NDC 상향 안(2021)’과 ‘탄소중립 기본계획(2023)’을 살펴보면 연도별 국가 감축목표가 과거에 비해 느슨하게 설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CCUS, 국제 감축 등 미래의 불확실한 감축 수단에 의존하기 위함이라고 분석된다.
이처럼 느슨하게 설정된 배출 허용 총량으로 인해 발생한 잉여배출권은 포스코, 쌍용이앤씨, GS칼텍스 등의 국내 주요 다배출 기업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해 왔다. 결국 국내 기업이 배출권 거래를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감축 목표는 후퇴하고 있으며, 유상 할당의 비율조차 낮은 상황이다. 제3차 계획기간 동안 실질 유상 할당 비율은 4.38%, 산업 부문 실질 유상 할당 비율은 0.48%에 불과하다.
이처럼 낮은 유상 할당의 비율은 배출권 수요를 감소시켜 낮은 배출권 가격과 더불어 유상 할당 수입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된다. 결국 배출 허용 총량-잉여배출권-유상 할당이 복합적으로 얽혀 배출권 수요가 줄어들고, 기업은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하는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시행하는 배출권 이월 제한과 제한 완화는 큰 효력을 갖지 못하는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배출권거래제 시장의 불확실성은 시장 비활성화로 이어진다. 국내에서 배출권 정산 거래는 이행 연도가 종료된 이후 정산이 마감될 때까지의 6개월간 집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작 이행 기간에는 거래량이 적고 가격 변동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배출권의 가격이 이행 연도 이후에 확정되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배출권 가격이 미리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배출량 감축을 위한 대체기술 개발 및 생산 과정에 대한 투자가 어려워진다.
[배출권거래제 시장 활성화에 모든 것이 달렸다]
정부는 위와 같은 배출권거래제의 한계점을 인지하고, 11월 27일 열린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안) 및 제3차 계획기간 국가 배출권 할당 계획 변경(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제4차 계획기간(’ 26~’ 30)의 윤곽을 발표했다. 크게 배출 허용 총량, 배출권 할당, 배출권 시장, 제도운영 효율화 및 기업 지원의 측면에서 논의가 이뤄졌으며, 이중 배출권 시장에서는 경매시장 확대 방안으로 ‘경매 참여 범위를 모든 할당 대상 업체, 시장조성자 등 제3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시장 활성화 방안으로는 ‘할당 대상 업체 外 제3자(자산운용사 등) 참여의 활성화 및 다양한 배출권 거래형태(위탁거래·선물거래 등)의 안착’을 제시했다.
[자료 2. 배출권 거래시장 활성화방안 발표자료]
출처: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한국보다 먼저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EU의 배출권시장을 살펴보면, 할당 대상 업체보다 금융기관, 개인 등 제3자의 참여 규모가 월등히 크고 현물시장보다 선물시장의 규모가 큰 상황이다. 또한 EU 배출권 가격은 석탄⋅가스 가격, 이상기후 현상 등 외부요인에 연동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배출권 시장은 현물 중심 거래로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제3차 계획기간(‘21~’25년)에 제3자의 배출권거래 중개회사와 시장 조성자로의 시장 참여를 도입했다. 제3자는 자기 매매 형태로 배출권을 거래하게 되며, 과도한 시장점유를 방지하기 위해 1개 사 당 배출권 보유 한도가 20만 톤으로 제한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상향돼 100만 톤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이를 통해 적극적인 ‘시장조성의 유도’, ‘단기 안정화 조치’를 넘어선 ‘중기 가격 안정화’, ‘규칙 기반 수량 조절을 통한 시장 가격 안정’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제4차 계획기간(‘26~’30년)에서 제3자의 시장 참여를 더욱 활성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며, 제3자 참여와 유상 할당 비율을 확대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를 통해 집합투자업자, 은행, 보험사, 기금관리주체 등 시장 참여자를 확대했다.
특히, 주목해 볼 것은 제3자 중에서 '증권사'가 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2023년 말 탄소배출권 시장 거래 활성화를 위해 참여 증권사를 확대했고, 일부 증권사는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에도 진출했다. NH투자증권이 대표적인데, 3월 25일 환경부에서 주관한 탄소배출권 거래 중개 시스템 도입 시범사업자로 단독 선정됐고, 2025년 상반기부터 위탁매매로 본격 시작할 예정이다. 이에 탄소배출권과 연계된 금융투자 상품이 출시되면 전문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도 탄소배출권 투자가 가능해진다.
[자료 3. GCF와 NH투자증권]
출처: metroseoul
그리고 7월 18일, NH투자증권이 UN 산하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GCF)의 기후테크펀드 운용기관으로 선정돼, 정부가 장려하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이에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증권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기후테크에 투자한다는 것이 ‘모순’적이지 않은가.
정부 입장에서 기후테크에 대한 장기 대규모 자금 공급을 위해서 민간 금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민간 금융인 NH투자증권이 기후테크펀드 운용기관으로 선정된 것은 매우 환영이지만, NH투자증권과 같은 증권사 입장에서 손익을 따져본다면, 손해가 더 크지 않을까? 이것이 정부와 민간 금융이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구조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제3, 4차 계획기간의 제3자의 시장 참여 및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 탄소배출권 할당 업체가 아닌 제3자는 배출권 가격 상승에 대한 차익을 노리고 시장에 참여하게 된다. 한국의 배출권 가격은 현재 횡보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가격 상승에 대한 차익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유럽 주요 탄소배출권 시장의 가격 반등과 유사한 흐름으로 국내 시장도 글로벌 배출권 가격의 동조화 및 수렴할 것으로 예상돼, 중장기적으로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배출권 시장에서 제3자의 매매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부와 증권사의 ‘win-win’ 구조는 성립된다.
[제3자 참여로 나타날 기대와 부작용]
배출권거래제 활성화를 위해 금융권의 제3자 참여는 긍정적인 전환점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금융권은 배출권 시장에서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며, 유동성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또한 해외 탄소배출권 시장 및 글로벌 탄소 크레딧 시장 진출을 통해 국내 시장의 외연을 확장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국내외 탄소시장 리서치와 정책 기관 및 할당 업체 간의 협력을 통해 시장 개선 방향을 제안하는 역할도 기대된다.
그러나 제3자 참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무상 할당량 조정, 이월 제한 등 시장 안정화를 위한 세부 규제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2023년 5월 기준 배출권 가격이 1만 2,300원으로 전년 말 1만 6,000원에서 3,700원 하락한 사례는 이러한 규제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KAU22 배출권에 대한 산업 부문 매도세가 지속되면서 시장 조성자 등이 이를 상쇄하지 못해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낮은 배출권 가격이 온실가스 감축 수요를 위축시키고 감축사업 투자 의지를 약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제3자 참여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규제와 할당량 조정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한편, 제3자 참여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제3자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차익을 노리고 배출권을 시장에 공급하지 않을 경우,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할 위험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3자 시장 참여는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이들의 배출권 보유 한도에 따라 시장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변동성을 최소화하면서 거래 유동성을 활성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3자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배출권 거래시장이 규제와의 균형 잡힌 운영을 통해 안정성과 효율성을 모두 갖추며,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하길 기대한다.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기후·환경정책 스터디] 탄소배출권, 그게 뭐야?", 23기 김경훈, 25기 김해원, 25기 노정연,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475
2. "[취재] 기후테크 육성을 위한 기후금융 충분한가?", 23기 김경훈, 24기 이지혜,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661
참고문헌
[그동안 배출권거래제는 어떻게 운영되었나]
1) 김규남, “[단독] 온실가스 뿜어댄 기업들, 그 덕에 되레 5600억 벌었다”, 한겨레, 2022.10.04,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61194.html#cb
2) 송홍선, 2050 탄소중립과 배출권거래제의 활성화, 자본시장연구원, 이슈보고서 21-23
[한국 배출권거래제의 한계점]
1) 플랜 1.5, “[기후제안]1.5도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 배출권거래제 제4차 계획기간 개편방안”, 2024.02.08, https://www.plan15.org/report/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 6 Mjt9&bmode=view&idx=17964892&t=board
2) 한국금융연구원, “배출권거래제의 한계와 보완 방향에 대한 논의”, 2023.12.28.
[배출권거래제 시장 활성화에 모든 것이 달렸다]
1) 국회의원 정책자료,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의 주요 쟁점과 개선 방안”, https://ampos.nanet.go.kr:7443/materialSeminarDetail.do?control_no=PAMP10000000074295
2) 기획재정부·환경부, “(1) 제4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계획(안)”, 2024.11.27.
3) 김현경, “탄소배출권 거래법 개정…유상할당 비율 확대 취지 담겨 ”, ESG 경제, 2024.01.10, https://www.esg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5584
4) “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국민참여입법센터, 2024.09.04, https://opinion.lawmaking.go.kr/gcom/ogLmPp/79714
[배출권거래제 시장에 증권사가 참여한다는 것은]
1) 나아영, “기후변화 대응과 증권사의 역할…NH투자증권⋅SK증권, 글로벌 기후 금융 시장 진출”, 녹색경제신문, 2024.10.22, https://www.greened.kr/news/articleView.html?idxno=319536
2) 윤수은, “글로벌 탄소배출권 시장 가격 변동성 주목, 국내 배출권 전망은?”, 이코리아, 2024.03.27, https://www.ekore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524
3) 이승균,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 확대…거래 플랫폼도 구축” , 한경ESG, 2024.10.05,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9272127i
4) 주상돈, “가격만 뛸라…표류하는 ‘탄소배출권거래 제3자 참여”, 아시아경제, 2021.08.09, https://www.asiae.co.kr/article/2021080911241824407
5) 허정윤, “NH투자증권, 아시아 증권사 최초 ‘GCF 기후테크펀드’ 운용기관 선정”, metro, 2024.07.18,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40718500632
[제3자 참여로 나타날 기대와 부작용]
1) 이영석,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 개선… 배출권 시장은 활짝 열고, 과잉할당은 줄인다”,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2024.09.05., https://www.korea.kr/briefing/policyBriefingView.do?newsId=156649087&tongYeog=Y&pageIndex=&startDate=2023-12-03&endDate=2024-12-03&srchWord=
2) 주상돈, “가격만 뛸라…표류하는 '탄소배출권거래 제3자 참여”, 아시아경제, 2021.08.09., https://www.asiae.co.kr/article/2021080911241824407
3) KB금융그룹, “국제감축 사업금융동향”
'News > 기술-산업-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침(Directive)과 규정(Regulation), 뭐가 다를까? (11) | 2024.12.30 |
---|---|
그가 돌아왔다. 미국도 돌아갈까? (16) | 2024.12.30 |
PFAS, 분해될 수 있을까? (7) | 2024.12.27 |
[Water Risk:수자원 리스크] 기후대응댐이 아니라 환경파괴댐이 될 수 있다 (13) | 2024.12.27 |
쓰레기 시멘트? 자원순환형 시멘트! ①시멘트 공정 (5) | 2024.11.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