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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Directive)과 규정(Regulation), 뭐가 다를까?

by R.E.F 23기 김경훈 2024. 12. 30.

침(Directive)과 규정(Regulation), 뭐가 다를까?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3기 김경훈, 25기 노정연, 25기 안수연

 

[이름만 바뀐 게 아니랍니다, ‘지침’에서 ‘규정’으로]

지난 4월 23일, 유럽의회는 기존 ‘에코디자인 지침’(Ecodesign Directive)을 개정하는 ‘에코디자인 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 Regulation)을 의결하였다. 어떻게 보면 '명칭의 단어 하나만 바뀐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름 외에도 많은 것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1. 에코디자인 지침 적용 대상인 가전제품]

출처: UNDP 

기존 ‘에코디자인 지침’은 주로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같이, 특정 에너지 사용 제품에 에너지 소비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적용됐다. 하지만 ‘에코디자인 규정’은 지속가능성 관점을 강조하여 제품의 내구성과 재활용 가능성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기준을 추가했다. 적용 품목 또한 확대되어, 음식, 의약품 등을 제외한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리적인 품목에 적용된다. ‘디지털 제품 여권’(DDP, Digital Product Passport)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등장했다. 제품 전체 수명 주기에 걸쳐 중요한 정보를 디지털 형식으로 제공하는 수단인데, DDP가 제공되는 경우에만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의의이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단순히 개정에서 그치지 않고 ‘지침’에서 ‘규정’으로 이름의 변화가 필요했을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하지만 이유 없는 변화는 없었을 터, ‘지침’과 ‘규정’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아가, 지침과 규정뿐 아니라, 권고, 결정은 어떤 특징과 차이점을 가지는지 알아보자.

 

[유럽연합(EU) 법령 체계]

[자료 2. 유럽연합(EU) 법령체계]

출처: 세계법제정보센터 

EU 법령 체계에서 규정(Regulation)과 지침(Directive)은 유럽연합(EU)의 주요 정책 도구로 자주 사용되며, 각각의 적용 범위와 법적 구속력에서 차이를 보인다.

규정(Regulation)은 모든 내용이 구속력을 갖고 있으며, 모든 회원국 내에서 직접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EU가 환경 규제를 규정으로 제정하면, 회원국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지침(Directive)은 회원국을 구속하지만, 형식과 수단의 선택은 회원국에 유보되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지침의 경우 각 회원국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국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법을 제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EU 법령 체계에는 규정과 지침 외에도 결정(Decision), 권고(Recommendation), 의견(Opinion)이 명시되어 있다. 결정은 모든 내용이 구속력을 가지나, 특정한 회원국 또는 특정인만을 구속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권고와 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정책 방향을 제시하거나 회원국 간의 협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자료 3. 유럽연합(EU) 법률의 위계구조]

출처: 한국환경산업기술원

5가지의 법률 체계는 법적구속력, 적용 범위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위 자료는 유럽의회 내 보고서에 근거해 다섯 층위로 구분한 위계구조이다. 위계구조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는 ‘조약’에는 기초적인 헌법에 해당하는 효력을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조약(Treaty of European Union, 이하 TEU), 유럽연합 운영조약(Treaty of Functioning of European Union, 이하 TFEU)이 해당한다.

유럽연합 법률의 일반원칙에는 보충성(subsidiarity)의 원칙과 비례성(proportionality)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원칙 아래에 위치한 입법안(legislative act)은 조약에 근거하고, 일정한 입법 절차를 통해 채택되는 법률안이다. 앞서 언급한 법령 체계인 규정, 지침, 결정, 권고, 의견이 법률안에 포함된다.

법률안은 크게 2가지를 기준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기준은 입법안과 비입법안이며, 두 번째 기준은 법적구속력이다.

 ① 입법안과 비입법안

유럽연합의 설립조약을 제외한 법률안에 초점을 맞추면 법률은 입법안과 비입법안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구분 기준은 조약이 명시한 입법 절차를 통해 법안이 채택되는가이다.

입법안은 EU 조약에 명시된 입법 절차를 통해 채택된 법률로, 규정, 지침, 결정, 권고, 의견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비입법안은 특수한 절차에 따라 채택되며, 위임법이나 실행법 등이 이에 포함된다. 위임법과 실행법은 비입법안이지만, 규정과 지침에 근거하기 때문에 법적구속력을 가진다.

② 법적구속력에 따른 구분

법적구속력이 있는 법안과 법적구속력이 없는 법안으로 구분할 수 있다.

법적구속력이 있는 법안에는 규정, 지침, 결정이 해당하며, 권고와 의견은 법적구속력이 없는 법안에 해당한다. 그러나 권고와 의견은 회원국의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유럽통합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규정과 지침은 모든 회원국에 적용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적용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다. 규정은 회원국의 별도 국내법 제정 없이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반면, 지침은 회원국의 국내법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효력을 갖는다. 이에 따라 규정은 강력한 통일성을, 지침은 회원국의 자율성과 조화를 중시하는 정책 도구로 활용된다.

 

[지침에서 규정으로]

EU의 법령 체계를 알아봤다면, 이번에는 지침(Directive)에서 규정(Regulation)으로 개정되는 과정을 ‘EU 에코디자인 규정’과 ‘EU 의료기기 규정’을 통해 알아보자.

[자료 4. 에코디자인 개정 타임라인]

출처: ©23기 김경훈

① EU 에코디자인 규정

유럽연합은 지난 2005년 에코디자인 지침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사용 제품(Energy using products, EuP)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고, 2009년 지침의 적용 대상을 에너지 관련 제품으로 확대, ‘신순환경제 행동계획’ 발표 이후에는 에코디자인 지침을 위 행동계획의 하위 전략으로 편입했다.

이후 유럽연합은 지속 가능한 제품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으로 기존 에코디자인 지침을 확대⋅개편해 지속가능성 관련 새로운 요구사항을 설정하는 개정안을 2022년 3월 제안했다. 2023년 8월 3자협의(trilogue)를 시작해 12월 잠정 합의에 이른 뒤, 2024년 4월 의회 승인 및 5월 이사회 승인을 거쳐 법안이 최종 확정되어, 7월 발효되었다. 규정으로 개정하면서 그 법적 구속력을 강화했는데, 이는 순환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EU의 일관된 노력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규정안은 주로 에너지 효율성을 강조했던 지침과는 달리, 제품의 전 생애주기 내 내구성, 재활용 가능성, 에너지 효율성 등 지속가능성 요건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제품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전자여권을 통해 제품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② EU 의료기기 규정

2010년 3월 유방성형용 실리콘 물질로 인하여 프랑스에서만 3만 명의 여성이 피해를 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PIP 스캔들로 불리는 사건인데, 프랑스의 ‘폴리 임플란트 프로스시스(PIP)’사가 비용 절약을 위해 공업용 실리콘을 사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유럽 내 의료기기의 인증기관의 품질과 역량을 개선하고, ‘CE표시 제도’의 실행 및 제도 개편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미 EU 의료기기지침(Medical Device Directive, MDD)이 존재했으나, 지침(Directive)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법의 강제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유럽은 20년 전인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의료기기와 관련된 일련의 지침(Directive)을 제정했고, 유럽 역내에서 의료기기 시장이 확대되면서 유럽연합 차원에서 공통 지침을 제정했다. 하지만 ‘지침(Directive)’이라는 규범의 형식 때문에 유럽지침은 회원국에 직접 적용되지 않으며, 각 회원국의 입법기관이 유럽지침을 자국에서 적용하기 위한 이행입법을 제정하게 되어, 각 회원국의 국내법에 따라 집행됐다. 이러한 사정으로 개별 국내법상의 차이가 존재했다. 이 때문에 지침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법이 의도하고 있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2011년 11월부터 5년여 동안 유럽연합 차원에서 의료기기 규제체계 개편을 위한 논의가 진행됐고, 2017년 개정안이 공포되면서 EU 의료기기 규정(Medical Device Regulation, MDR)으로 개편됐다.

EU 에코디자인 규정은 순환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EU의 일관된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EU 의료기기 규정은 PIP 사건 발생으로 인한 의료기기 안정성과 품질, 역량 개선이라는 사회적인 요구를 바탕으로 한 개정 강화였다.

 

[복잡하고 헷갈리는 EU 법령 체계, 한국 수출 기업들의 대응 방안]

앞서 살펴본 사례에서처럼, 단어 하나 차이로 적용 범위, 구속력에서 차이가 생긴다. 개정을 통해 기존의 것을 보다 강화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갈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에코디자인 규정만을 두고 보자면, 적용 대상 범위가 ‘모든’ 물리적 품목으로 확대된 만큼, 유럽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제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에코디자인 규정 및 해당 품목별 이행 규정을 충분히 고려한 제품을 제조해야 한다. 또한, ‘지속가능성 관점’을 더 강조한 만큼, 제품의 생애주기에 대해 파악하여 탄소 발자국, 재생 가능 소재 사용, 유해 물질 함유량 등을 파악할 필요성이 생겼다.

[자료 5. 2022 대EU 10대 수출 품목]

출처: 주벨기에 유럽연합 대한민국 대사관 겸 주북대서양조약기구 대한민국 대표부 

지난 23년, 한국은 EU에 약 682억 불, 22년 681억 불의 수출액을 달성했다. 22년 기준, 수출 품목의 상위권에는 자동차, 자동차 부품, 선박, 반도체 등 제조업 군이 차지하고 있다. ‘지침’이 ‘규정’으로 개정되면서, 적용받는 품목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사실상 모든 제조업 제품이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는 만큼 면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비슷해 보여 헷갈리기 쉬운 만큼, 오히려 주의 깊게 법령 체계를 살펴보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적절한 전략을 세우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자본과 인력이 있지만, 중소 및 중견 기업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놓쳐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와 많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EU인 만큼, 국가 차원에서도 EU 법의 개정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지원 및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U의 환경정책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돌고돌아, 이제는 순환경제로!", 22기 유현서,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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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름만 바뀐 게 아니랍니다, ‘지침’에서 ‘규정’으로]

1) 신승국 외, "EU, 에코디자인 규정 (ESPR) 발효", 법률신문, 2024.08.19, https://www.lawtimes.co.kr/LawFirm-NewsLetter/200778 

[유럽연합(EU) 법령 체계]

1) 세계법제정보센터,"유럽연합(EU)", https://world.moleg.go.kr/web/wli/nationReadPage.do?ISO_NTNL_CD=EU

2) 한정훈, "유럽연합의 법체계 및 택소노미(Taxonomy) 관련 법령 연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2022.11.01, https://www.keiti.re.kr/common/board/Download.do?bcIdx=35299&cbIdx=318&streFileNm=30b44700-f541-40d1-b741-7a945712a218&fileNo=3

[지침에서 규정으로]

1) 법무법인(유) 세종, "EU 에코디자인 규정 유럽의회 통과 - 에코디자인 요구조건 강화", 2024.05.22, https://www.shinkim.com/kor/media/newsletter/pdf/2458

2) 왕승혜, "EU의 의료기기 법제에 관한 분석", Global Issue Paper 17-08, 2017.08,  http://klri.re.kr:9090/bitstream/2017.oak/5452/1/16076k.pdf

3) 윤진식, "EU 에코디자인 규정 발효에 따른 시사점 및 대응방안", 국제무역통상연구원 TRADE FOCUS, 2024.07.11, https://www.kita.net/researchTrade/report/tradeFocus/tradeFocusDetail.do?no=2622

[복잡하고 헷갈리는 EU 법령 체계, 한국 수출 기업들의 대응 방안]

1) 정영효, "[단독] '수출 비용만 1조'…EU 무역장벽에 한국 '초비상'", 한국경제, 2024.10.09,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0093907i

2) 주벨기에 유럽연합 대한민국 대사관 겸 주북대서양조약기구 대한민국 대표부, "한-EU 교역 현황", 2024.07.18, https://overseas.mofa.go.kr/be-ko/wpge/m_25615/contents.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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