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허무하게 실패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마련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5기 남궁성
공식적인 마지막 국제 플라스틱 협약 회의 개최
유엔 플라스틱 협약 마련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가 11/25~12/2 동안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됐다. 4차까지 회의가 진행되었지만, 각국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협약문에는 수천 개의 괄호만이 남아 5차 회의까지 개최한 것이다. 5차 회의는 공식적으로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하기 위한 최종 회의였던 만큼 구속력 있는 협약이 완성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전 세계적으로 매우 높았다.
이번 5차 회의 시작 직전 날에는 에코나우와 유엔환경계획의 주도하에 각국 청년대표단을 동서대학교에 모아 플라스틱 협약에 대한 의견을 여러 이해관계자와 공유했다. 해당 행사에는 유엔환경계획 공식 청소년 그룹(UNEP CYMG), 세계자연기금(WWF), 플라스틱 EURO 연구기관(Plastics Europe), 세계보건기구(WHO), 그린피스, 이집트 환경부, 스리랑카 환경부, 주한 미국 대사관, 가나 환경부, Champion Youth Africa 등 전문기관의 이해관계자와 청년 300여 명이 참여했다.
[자료 1. INC-5 사전 행사에 참여한 청년대표단 및 이해관계자들]
출처: ©25기 남궁성
해당 행사에서 WWF 관계자는 이번 5차 회의가 원만한 합의에 따라 완성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요소들은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미해결된 문제가 많은 채로 5차 회의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과 압박감은 어느 회의 때보다도 높았다.
각국의 첨예한 의견 대립
사전 행사까지 개최하며 만반의 준비를 보이는 듯싶던 INC-5는 과연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공식적인 마지막 5차 회의까지도 각국의 첨예한 의견 대립은 계속됐다.
비록 수천 개의 괄호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큰 주제는 '원료 물질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와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유해 화학물질 퇴출', '재원 마련'으로 워딩은 다소 간단했다. 이는 모두가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했으나, 기존부터 이어져 온 의견 대립 기조는 회의의 마지막까지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INC-5가 개최되기 전부터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한 대립의 구도는 생산 감축을 주장하는 개발도상국 중심, 생산 감축에 반대하는 산유국 중심, 그리고 중립의 입장을 고수하는 국가들로 나뉘어 왔다. 재정 지원에 관해서 개발도상국들은 사전 행사부터 본 행사까지 꾸준히 재정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자료 2. 미디어 타임을 갖는 HAC 회원국들]
출처: ©25기 남궁성
즉, 개발도상국은 재정 지원의 뒷받침과 함께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협약의 완성을 목 놓아 외쳐온 것이다. 본 행사의 기자회견 시간에 이 같은 의견을 밝힌 후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은 바 있다.
각국이 한자리에서 합의하는 모습 보기 어려워
그러나 회의의 공식적인 마지막 날인 12/1에도 각국이 한 공간에 모여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기 위해 논의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이날 이뤄진 대부분의 회의는 사실상 지역별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EU는 EU끼리,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은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끼리 회의하는 등 의견이 공통된 국가끼리의 회의만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 어떤 회의에서도 의장이나 유엔환경계획 관계자와 같은 고위 이해관계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료 3. INC-5 공식 마지막날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간 회의]
출처: ©25기 남궁성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의장이 선언했던 개회사를 제외하고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각국이 한곳에 모여 앉아 입장을 공유하는 시간이 없었던 셈이다. 개회사의 발언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회의가 진행되었던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자료 4. INC-5 공식 마지막날 일정]
출처: INC-5 자료
회의의 진행 일정 또한 고정적이지 않았다. 당초 일정은 위의 사진과 같았으나, 최종 회의였던 Meeting of the INC Bureau는 1시간 반 이상 연기되었고 전반적인 일정들이 대부분 'closed meeting' 즉, 비공개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공식적으로 INC-5의 마지막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회사를 제외하면 본 일정이 전부 비밀리에 진행된 셈이다.
벡스코 대관까지 연장했으나 결국 협상 실패
공식적인 회의 기간 동안 개발도상국들은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협약의 수립과 재정 지원 확대를 목 놓아 외쳤다. 이 같은 헌신적 외침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협약은 완성되지 못했다.
의장에 따르면 기존 70페이지가 넘는 협약문을 22페이지가량으로 줄이기는 하였으나, 이번 협약의 최대 쟁점이라 할 6조 ‘공급 또는 지속가능한 생산’ 조항에는 원래 없었던 괄호가 다수 추가돼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바뀌었다. 해당 선택지는 ‘플라스틱의 원료인 1차 폴리머의 생산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줄이는 전 지구적 목표를 담은 부속서를 첫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하자’는 것인데, 첫 총회라는 ‘기한’과 부속서라는 ‘형식’을 달리하거나, 생산만이 아닌 ‘소비’와 ‘사용’까지 감축 대상으로 하도록 선택지가 늘었다. 또 1차 폴리머의 생산 등을 ‘감축’만 하지 않고 ‘유지’나 ‘관리’로 표현을 바꿀 수 있게 했다.
가장 중요한 주제에 있어서 의견이 수렴되지 못하고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다. 공식적인 회의 기간 동안 협상이 끝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는지, 마지막 날 회의가 끝나기 전에 벡스코의 대관 일정을 12/3까지 연장했었다.
결론적으로 2일 INC-5는 이날 오전 3시쯤 폐회했다. 사실상 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회하는 '유엔 사막화 방지 협약(UNCCD)' 때문에 협상 기한을 무한정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UNEP과 INC 참여국들은 2025년 추가 협상회의(INC-5.2)를 통해 협상을 지속할 방침이다. 각 환경단체는 이번 회의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할 어떠한 방침도 나오지 않았다며 비판에 나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자료 5. INC-5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는 개발도상국 대표]
출처: ©25기 남궁성
협상 초기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이 생산 감축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며 최소한의 '선언적 성안'이라도 나올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러시아 등 산유국이 생산 규제를 거부했고, 이후 다른 쟁점들도 의견이 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취하기보다는 '중재자' 역할을 했으나 협약 성안을 이끌지는 못했다.
공식적으로 의장이 밝힌 협상의 실패 사유는 산유국의 반대다. 산유국들은 INC-5가 개최되기 전부터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해 반대해 왔다. 산유국 등의 '지연' 혹은 '반대'에 대해 의장은 "소수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개별적으로 진행된 회의 진행방식도 협상 결렬의 원인으로 해석된다. INC-5의 공식적인 폐막일까지도 각국은 의견이 공유되는 국가끼리만 회의를 지속하였다. 일정만 보더라도 마치 연장을 당연시하게 생각하거나, INC-5.2까지 넘어가는 것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비록 이번 협약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주제인 플라스틱 오염의 해결을 다루는 만큼 각국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해 협약을 완성해야 하는 것은 맞다. 자칫 한쪽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채로 협약문을 만들게 되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협상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플라스틱 오염인 만큼 우유부단한 결단으로 인해 협약의 완성이 무기한 지연되는 것은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자칫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희석되거나 오염의 가속화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위험성이 충분히 높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플라스틱 아닌 종이 빨대, 진정한 친환경 해결책일까?", 25기 맹주현,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663
2. "플라스틱 크레딧,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25기 안수연,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635
참고문헌
공식적인 마지막 국제 플라스틱 협약 회의 개최
1) 박영복, "에코나우, INC-5 본 회의에 청년 목소리 담는다", 데일리경제, 2024.11.25, http://www.kd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3696
벡스코 대관까지 연기했으나 결국 협상 실패
1) 박기용, 정봉비, "더 복잡해진 ‘플라스틱 협약 5차 초안’…결국 기한 넘기나", 한겨레, 2024.12.01,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70120.html
2) 황덕현,"'부산 플라스틱 협약문' 없었다…산유국 반대로 빈손 폐막", 뉴스1, 2024.12.02, https://www.news1.kr/society/environment/561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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