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유통기한을 묻다: 생애주기와 탄소의 역설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7기 함예림
오래된 믿음, 과연 여전히 유효한가?
‘건물을 오래 쓰는 것이 곧 친환경’이라는 명제는 단편적이다. 문제는 수명이 아니라 수요와 맥락이다. 국토교통부가 2023년 발간한 '공공건축물 에너지 성능 개선'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 공공청사의 단열성능을 현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적으로 1제곱미터당 약 42,000원이다. 이를 연면적 3,000㎡ 규모의 중소형 청사에 적용하면 단열 보강에만 1억 2,600만 원 이상이 투입된다. 이는 일반적인 신축 비용의 20~25%에 해당하는 수치로, 단순 리모델링이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통념과 현실이 어긋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1. 철거 시 발생하는 건설폐기물]
출처: 연합뉴스
게다가 해체 시 발생하는 건설폐기물은 일반 건물보다 평균 1.6배 많다. 2021년 기준 국내 건설폐기물 총 발생량은 약 83.4백만 톤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철거를 수반한 대규모 공공건축물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건축이 오래될수록 해체는 어렵고, 리사이클링 비율은 낮으며, 비용과 탄소 배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수명보다 중요한 것: 변화하는 수요의 흐름
[자료2. 통계청의 2022년 지역소멸위험지수]
출처: 이데일리
한국의 도시 구조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2년 지역소멸위험지수에 따르면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46.3%가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했고, 이들 지역은 향후 10~20년 안에 학교, 복지시설, 행정청사 등의 물리적 수요 자체가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시설들이 ‘영구 사용’을 전제로 설계되면, 결과적으로 수요가 사라진 뒤에도 철거 혹은 유휴화 비용이 지역에 부담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50~100년 수명을 전제로 한 고정형 건축이 반드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 변화하는 인구 구조와 수요 흐름에 맞춰, 빠르게 설치하고 해체할 수 있으며 이전과 재사용이 가능한 유연형 건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숨겨진 배출: 운영 단계의 탄소가 70%
[자료 3. 건축물의 탄소배출의 약 70%가 사용 단계에서 발생함을 보여준다]
출처 : 환경데일리
설계와 시공이 아무리 친환경적이어도, 건축물의 운영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면 그 건축은 결코 지속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건축물 생애주기 탄소배출의 약 70%가 사용 단계에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냉난방, 조명, 승강기, 전자기기 등 일상적인 설비가 끊임없이 전력을 소비하며, 이 전력이 대부분 화석연료 기반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은 더욱 크다.
국내의 실천: 유연형·리트로핏 사례
국내에서도 이러한 건축 생애주기 전환의 흐름이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서울시는 2023년부터 노후 공공건축물 리모델링에 ‘탄소중립 리뉴얼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해체 대신 개보수를 선택한 사례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청 별관은 외피 성능을 강화하고 고효율 설비로 전환하는 리트로핏을 통해 기존 건물을 유지하면서도 연간 약 30% 이상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보이고 있다. 또한,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시티의 일부 실증단지에서는 조립식 모듈러 방식으로 단기간에 설치 가능한 유연형 공공건축을 도입하여, 인구변동에 따른 대응력을 실험하고 있다.
[자료 4.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출처: 국토교통부
기술로 완성되는 생애주기 최적화
[자료 5. 디지털 트윈의 구조]
출처 : 스마트시티코리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에너지 리트로핏(retrofit)과 디지털 트윈 기반의 운영 최적화가 주목받고 있다. 리트로핏은 노후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을 개선하는 것으로,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단열재 보강, 고효율 설비 교체 등을 통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디지털 트윈은 건축물의 실제 상태를 디지털로 복제하여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이 두 방식은 특히 신축보다 탄소 발생량이 적으며, 실제 환경에서 적용 가능한 지속가능한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료 6. 디지털 트윈 건축 적용사례 가시마건설의 3D K-Field]
출처: 스마트시티코리아
건축의 지속가능성은 '머무름'이 아니라 '흔적'이다
결국 건축물의 친환경성은 얼마나 오래 남는지가 아니라, 그 전체 생애주기 동안 얼마나 ‘가볍게’ 머물렀는가에 달려 있다. ‘백 년짜리 건축’이 꼭 필요한 시대는 지났다. 그 자리를 유연하고, 순환 가능하며, 운영까지 고려한 생애주기 중심의 건축이 대체하고 있다. 건축의 목적은 이제 공간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자원을 빌리고, 시간을 점유하고, 최소한의 흔적만을 남기고 떠나는 데 있다. 그런 건축만이 기후위기 시대에 윤리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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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오래된 믿음, 과연 여전히 유효한가?]
김지혜, "오래된 건물을 녹색건물로 만드는 방법", 사이언스타임즈, 2023-12-11, https://www.sciencetimes.co.kr/?p=254510
[수명보다 중요한 것: 변화하는 수요의 흐름]
김태형, "모듈러 아파트, 탄소 배출량 17.5% 덜 내뿜는다", 대한경제, 2023-06-08,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306081732397750241
[숨겨진 배출: 운영 단계의 탄소가 70%]
김희용, "가속화되는 '탄소중립', 건설업계 환경 경영 중요성 커진다", 대한경제, 2023-05-08, https://m.dnews.co.kr/m_home/view.jsp?idxno=202305081425551170414
[국내의 실천: 유연형·리트로핏 사례]
이홍일, "건산연 '건설업 친환경 공법·자재 적극 활용해야 탄소중립 실현'", 뉴시스, 2023-05-08, https://www.newsis.com/view/NISX20230508_0002294233
[기술로 완성되는 생애주기 최적화]
김영은, "[그래픽]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및 비중", 연합뉴스, 2021-04-16, https://www.yna.co.kr/view/GYH2021041600150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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