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없다, 한국의 여름과 기후위기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6기 신혜진
장마가 없다?
장마.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를 이르는 말로, 한국의 여름을 대표하는 기상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장마가 수상하다. 기상청은 지난 7월 3일, 제주 및 남부 지역에 장마가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한 것의 영향이다. 이에 제주는 6월 12일부터 16일까지 15일, 남부는 6월 19일부터 7월 1일까지 13일의 장마 기간에 그쳤다. 이는 제주 7일, 남부 6일이었던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짧은 기록인데, 평년 장마 기간이 30일 이상임을 고려할 때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장마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 한국의 여름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여름이 아니다. 기상청은 2008년부터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 발표를 중단하고, 2021년에는 ‘장마전선’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또한 기상청의 2022년 장마백서에는 기후위기로 인해 장마라는 표현의 전통적 수명이 다했으며, 한국형 우기로 용어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바 있다. 한국의 여름, 정말 이제 장마는 없는 것일까?
[자료 1. 2024 장마철 출근길 풍경]
출처 : 조선일보
전통적인 장마 메커니즘
장마는 동아시아 몬순 시스템의 일부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몬순은 여름철과 겨울철에 넓은 지역에 걸쳐 바람 방향이 거의 정반대로 부는 것을 이르는 말로, 여름철에는 남서풍이 불며 장마가 찾아오고, 겨울철에는 시베리아 대륙에서 강한 찬 바람이 부는 것이 그 예이다. 몬순은 대륙과 해양의 비열 차이에 의해 표면이 불균등하게 가열되므로 발생한다. 육지는 바다보다 빨리 뜨거워지고 빠르게 식지만, 바다는 천천히 뜨거워지고 천천히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열 차이로 인해 여름철에는 대륙이 해양보다 빠르게 가열되어 대륙에 저기압이 형성되고,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해양 상에 발달한 고기압에서 대륙으로 공기가 이동한다.
[자료 2. 아시아 대륙의 몬순 시스템]
출처 : SBS NEWS
한국의 장마는 북쪽의 한랭 습윤한 오호츠크해 기단과 남쪽의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이 핵심적인 작용을 해 형성된다. 오호츠크해 기단은 오호츠크해 주변의 융설수 및 융빙수가 유입되며 형성되는 해양성 한대기단으로, 봄철 시베리아 지방의 눈이 녹기 시작하며 오호츠크해 주변에 차가운 물이 유입되므로 기단이 발원하기 적합한 조건이 된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미국 하와이 동북쪽 중위도 태평양에 중심을 둔 기단인데, 불균등 가열로 인한 전 지구 대기순환으로 인해 형성된다. 아열대 해상에서 발원하므로 매우 고온 다습한 것이 특징이다.
장마전선은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두 기단의 세력이 비슷할 때 발생하는 정체전선인데, 기상학적으로 장마는 이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오는 것을 의미한다. 남쪽의 북태평양 기단과 북쪽의 오호츠크해 기단이 만나서 형성되며, 기단의 세력이 변화함에 따라 전선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리고, 장맛비가 내리게 되는 것이다.
[자료 3. 동아시아 몬순과 장마전선]
출처: 기상청
최근 여름철 강수 특성
한국의 장마는 최근 극도로 불안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2020년에는 역대 최장 기간이었던 54일을 기록한 반면, 바로 이듬해인 2021년과 2025년에는 각각 2주 수준의 극단적으로 짧은 장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평년 장마 기간인 약 30일과 비교할 때,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변동성을 보여준다.
또한 1974년부터 2023년까지 50년간 시간당 50mm 이상의 극한 호우 발생 횟수가 연평균 7.8회에서 18.9회로 2.4배 증가했다. 최근 기록적인 호우 사례만 살펴보아도 여름철 강수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2024년 전북 군산에서 시간당 146mm의 폭우가 내린 것은 200년에 한 번 내릴 정도의 수준인데, 불과 2년 전인 2022년 서울 동작구에서도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린 바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통해 살펴볼 때 200년 빈도여야 하는 폭우가 불과 2년 간격으로 발생한 것은, 한국의 강수 특성이 변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료 4. 2024년 대전 서구의 호우 피해 현장]
출처: 경향신문
짧은 시간 강하게 쏟아부은 뒤 그치는 비. 현재 한국의 집중호우는 동남아시아의 스콜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호우 메커니즘이 다르기는 하나, 같은 시·군·구 내에서도 지역 간 강수량 편차가 최대 10배 이상 나타나는 현상이 일상화되어 '누더기 비'라는 표현까지도 등장했다. 2024년 7월의 사례를 보면, 전북 진안에 231mm가 내린 반면 여수는 29mm, 울진은 20mm에 그쳐 전통적인 장마의 동서로 긴 정체전선이 전국에 고르게 비를 뿌리는 형태에서 남북으로 폭이 좁고 강한 정체전선이 국지적으로 집중호우를 쏟아내는 패턴으로 그 양상이 완전히 변했음을 보여준다.
변화의 원인과 기후위기
그렇다면 장마가 사라져가고, 스콜성 호우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한국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 상승이다. 실제로 서해의 표층 수온은 1968년부터 2022년까지 약 1.19도가 올라,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표층 수온 상승(약 0.52도)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해수 온도의 상승은 곧 대기 중 수증기의 증가를 의미한다. 대기 중 수증기가 증가하면, 자연스레 강수량 또한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8월 강수량은 1990년 이후 이전에 비해 30% 증가하여 7월 강수보다 40~50mm 더 많이 내리고 있다. 8월 초순 강수량은 1973~1993년 63mm에서 1994~2020년 95mm로 50.8% 증가했으며, 과거 8월 말 한 번 존재했던 강수 피크 또한 8월 초와 8월 말, 두 차례로 분화됐다. 또한 1994년 이후 장마철과 2차 우기(가을장마)의 간격이 좁아지고, 2차 우기의 강수량이 장마철 못지않게 늘어나는 변화가 나타나 장마가 끝난 후에도 장마 수준의 강수가 계속되는 현상이 일상화됐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의심할 나위 없이 지구온난화에 있다. 장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북태평양 고기압, 한반도 남서쪽에 위치한 열대몬순 기압골, 북동쪽의 고온건조한 대륙성기단 및 오호츠크해 기단, 한대성 극기단 등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들의 강도와 발달시기, 위치 등이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극과 고위도 지역이 더 빠르게 온난화되면서, 찬 해역에서 발달하는 오호츠크해 기단의 세기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반면 북태평양 기단은 해수 온도 증가에 따라 이전보다 더 강하고 이르게 발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티베트고원에서 발달하는 상층 고기압이 한반도에 일찌감치 영향을 미치면서 장마의 정상적인 발달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의 여름철 기상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한국의 여름은?
최근 기상을 반영해, 기상청은 2022년 장마백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우기' 개념을 도입했다. 6월 하순부터 9월 하순에 기후 평균 강수량보다 4mm 넘게 비가 올 때를 우기로 설정하고, 7mm를 넘는 비가 올 때를 지금의 장마철인 '1차 우기', 이후 한동안 비가 그쳤다 다시 7mm 이상 비가 오는 기간을 '2차 우기'로 표현한 것이다.
해당 장마백서를 작성한 서경환 부산대 교수에 따르면, 장마철 강수량이 가까운 미래(2020~2039년)에는 최대 5% 증가하고, 21세기 말(2080~2099년)에는 최대 25%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과 대비하여 2.0도 상승하게 되면 강수량은 24%, 상위 10%의 극한 강수는 20%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21세기 말에는 극한 강수량이 최대 70%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기후위기는 이제 현실이 돼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고 있다. 장마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극한 호우가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급증한 것은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따라서 '장마'라는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 기존의 도시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변화하는 기후에 맞춘 종합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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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장마는 없다?]
1)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기후통계분석>통계분석>장마”, (n.d.), https://data.kma.go.kr/climate/rainySeason/selectRainySeasonList.do
2) 박상현, “[뉴스Q] 올해 벌써 끝? 장마가 수상하다”, 조선일보, 2025.07.04., https://www.chosun.com/national/transport-environment/2025/07/04/FV5UFTZUKBEKPNL3XZV45ZZ2NQ/
[전통적인 장마 메커니즘]
1) 기상청 예보국, “장마전선의 특징과 분석방법”, 손에 잡히는 예보기술, 15(6), 2012.06.28.
2) 부산대학교, CAD Lab, “장마 기간 기단 배치”, (n.d.), https://climate.pusan.ac.kr/climate1/48157/subview.do
3) 백나용, "비도 안 내리는데, 장마 맞나요? 끝난 거 아닌가요?", 연합뉴스, 2021.07.14., https://www.yna.co.kr/view/AKR20210714027500056
4) 안영인, “[취재파일] 장마는 언제 시작됐을까?“, SBS NEWS, 2014.09.23.,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597381
[최근 여름철 강수 특성]
1) 박성훈, “[팩트체크] 우리나라가 동남아성 기후로 바뀌었다?”, 2024.07.26.,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07430
2) 박찬, “‘스콜’ 닮은 소나기 잦아져…아열대 기후 변화 가능성”, 조선일보, 2024.08.18., https://www.jnilbo.com/74555758356
3) 심재웅, ““국지성호우, 폭 좁고 강도 높은 비구름대 형성 탓…실시간 예보 예의주시를”, 농민신문, 2025.05.09., https://www.nongmin.com/article/20250507500626
4) 이근영, “기후변화로 더는 ‘장마 아닌 장마’…“우기로 바꿔 부르자””, 한겨레, 2022.10.20.,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63511.html
[변화의 원인과 기후위기]
1) 김유민, “500년 넘은 ‘장마’ 한국에서 사라집니다”, 서울신문, 2023.07.13., https://www.seoul.co.kr/news/life/2023/07/13/20230713500155
2) 안순일 외, “한반도 기후변화의 추세와 원인 고찰”, 한국기후변화학회지, 2, 4, 237-251, 2011.
3) 안중배, “[EE칼럼] 기후위기 속의 장마”, 에너지경제, 2025.07.01., https://m.ekn.kr/view.php?key=20250630027353065
4) 임해원, “[팩트체크] "한반도에 장마가 사라지고 있다" 사실은?”, 이코리아, 2023.07.26., https://www.ekore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280
[앞으로 한국의 여름은?]
1) 김수영, “'장마' 단어 사라질까…기상청, 기후변화 영향에 '우기' 고민”, 한경, 2022.10.20.,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102027367
2) 황덕현, “장마는 '1차 우기'…기후변화에 장마 개념 11년 만에 바뀐다”, 뉴스1, 2022.10.20., https://www.news1.kr/society/weather-disaster/4838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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