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자국 산업 보호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1기 정재혁
EU 한마디에 풍력발전 국산화 지원 제도(LCR) 폐지 예정중인 정부
정부는 지금의 재생에너지 구조에서 풍력의 비중을 크게 높이겠다고 했으나, 아직 국내 풍력 발전 기술은 걸음마 단계이다. 그래서 해외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지어서 국내 인력과 부품의 사용 비율을 일정 수준을 넘기면 혜택을 주는 이른바 LCR(Local Content Requirement)이란 제도를 만들어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경험을 쌓아 우리나라만의 기술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럽연합에서 자국산 완제품이 아니라 우리나라 부품을 쓰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부가 갑자기 이 제도를 없애기로 했다. 결국 해외 기업들은 투자를 없던 일로 되돌리는 걸 검토하고 있고, 국내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자료 1. EU 한마디에 '제도 폐지']
출처 : EastSideStory
왜 LCR제도를 폐지해서는 안될까?
일단 LCR제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보자. '국산화 비율 반영 제도'라 불리는 LCR은 풍력시스템 제작 시 국산 부품을 일정 비율 사용하도록 정하는 것이다. 자국 산업 보호와 국내 생산기지 유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나라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전공기업을 선두로 진행되고 있으며, 국내기업 육성에 일정 수준 역할을 해야 하는 공기업 입장에서 아직까지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국내 제조업체에 시장진입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또한 해외 업체의 국내 생산기지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 해외 업체들이 국내에 해상풍력 관련 생산공장을 건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만, 터키, 인도 등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다른 나라도 부품이나 생산라인 현지화를 추진 중이라 해외 기자재업체들의 거부감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일정 수준의 기자재 공급 문제만 확정한다면 관련 시장 확대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점은 국산 해상풍력 발전시스템 확산 및 경쟁력 강화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그 어떠한 자원도 다른 나라에 비해 풍부하지 않으며, 오직 기술력에 의존해 에너지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는 가운데 해상풍력발전은 가장 경쟁력 있는 대안으로써 점차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상황에 알맞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해상풍력 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면 에너지 공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자료 2. 국내 최초 상업용 해상풍력발전시대 연 제주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전경]
출처 : 광주드림
외국의 자국 산업 보호 현황
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란 미국 내 급등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으로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법안의 주 내용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친환경에너지 생산과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3690억 달러를 투입하며,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춘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 신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를 해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IRA에 투자되는 예산 중 절반 정도인 3690억 달러가 기후변화 대응 및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에 사용된다. 이 법안에는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고 전기자동차 및 에너지 저장시스템에 대한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보조금을 확대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배터리에 들어가는 중국에서 추출, 제조, 재활용된 광물이 일정 비율 이하여야 한다. 먼저 전기차 보조금 7500달러의 절반을 받기 위해서는 배터리의 핵심자재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Free Trade Agreement)를 맺은 국가를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 나머지 절반의 보조금은 북미에서 제조되는 배터리의 주요 부품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는데, 이 비율은 2029년에 100%까지 확대된다.
[자료 3. 2022년 IRA 전기차 세액공제 관련 규정]
출처 : 국민일보
IRA에 따라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되어 현대·기아 전기차의 현지 수출에 문제가 발생했다. IRA에 따라 전기차 구매자에 대한 미국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한국산이 제외된 건 미국 의회가 공급망 안정화 정책 차원에서 보조금 지급대상을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로 제한하는 규정을 뒀기 때문이다.
②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EU는 향후 그린·디지털 전환 산업을 선두하고자 역내 관련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핵심원자재법(CRMA)을 수립했다. 또한 EU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우 사태를 겪으며 에너지 및 원자재 공급망을 안보의 개념으로 그 중요성이 확대, 역내 공급망 구축을 통해 관련 안보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EU는 2008년부터 원자재 이니셔티브(Raw Material Initiative)를 통해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원자재 공급망 확보 및 2차 원자재 생산 확대를 목표로 유럽 차원의 원자재 통합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번 핵심원자재법은 원자재 이니셔티브 아래 EU가 2011년부터 관리해오던 핵심원자재 목록을 새로 개정하고 원자재관리 정책의 우선순위를 전략기술 개발과 제품생산을 위한 원자재 조달에 초점을 맞추어 기존 관리제도를 보완해나갈 계획이다.
따라서 집행위가 발표한 핵심원자재법의 초안은 향후 EU의 산업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주요 산업에 필요한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을 역내 구축하기 위한 방법과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자료 4. EU CRMA 초안]
출처 : 국민일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옳다
기술 및 자원의 블록화, 자국 우선주의 심화, 환경규제 강화로 공급망 불안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차전지 핵심광물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주요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전방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핵심산업 및 취약분야 대한 "글로벌 공급망 대응 프로그램"을 확대 및 개편이 필요한 상황이며, 해외자원개발, 장기구매계약, 국내 도입기반 구축 등 자원도입을 통해 조달처 다변화와 공급망 안정화에도 기여가 필요하다.
미국은 이미 공급망 안정화를 실현 중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공급망 안정화 정책 시행이 비단 미국에만 그치지도 않을뿐더러, 적용 품목 또한 전기차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유럽과 중국 등 거대시장이 역내에 자족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정책을 본격화하기 시작함으로써 그동안 자유무역체제에 기반한 국제분업체계가 근본부터 흔들릴 상황에 처했다.
[자료 5. 중국을 견제·압박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 중국의 보복 정책이 우려된다.]
출처 : YTN
변화는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도전이 될 전망이다. 우선 주요 시장에서 공급망 이슈를 빌미로 외국산에 대한 무역장벽이 높아질 위험이 커졌다. 또 생산기반 해외 이전에 따른 국내 생산력 및 일자리 위축 가능성도 커지게 됐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은 “글로벌 공급망 이슈 파고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라며 “격변에 맞춘 지혜롭고 기민한 무역과 산업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다만 공급망 이슈가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불공정 무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자원의 국가별 편중 현실이나 글로벌 시장 상황, 분업의 효율성 등을 하루아침에 무시하는 생산체제 구축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공급망 이슈는 일단 주요 품목에 대한 역내 생산력 강화와 ‘마음이 맞는 국가(like-minded country)’들과의 협력 강화 등의 수준으로 진행되면서 구조적 균형점을 찾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따라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국 산업 보호이다. 결국 자국 내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면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도 확보할 수 없다. 국산 부품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시장 활성화의 차원을 넘어서 미래를 위한 데이터를 쌓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중치가 삭제되면 글로벌 기업이 한국 진출을 검토하는 데 설득력이 떨어지고 선진기업의 기술 습득과 일자리 창출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고 강력한 규제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역행하지 않고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추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 보호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우리나라와 해상풍력, 2021년 신년 궁합은?", 작성자(15기 김민서, 16기 김미림, 17기 서유경), 우리나라와 해상풍력, 2021년 신년 궁합은? (renewableenergyfollowers.org)
2. "바이든이 쓰는 새로운 미국, 환경 부문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작성자(15기 김민서, 17기 서유경, 17기 주형준, 17기 이명현, 18기 김채연), 바이든이 쓰는 새로운 미국, 환경 부문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renewableenergyfollowers.org)
참고문헌
[EU 한마디에 풍력발전 국산화 지원 제도(LCR) 폐지 예정중인 정부]
1) 박상욱, "[단독] EU 한마디에…정부, 풍력발전 국산화 지원 제도 폐지", JTBC 뉴스, 2023. 04. 03, [단독] EU 한마디에…정부, 풍력발전 국산화 지원 제도 폐지 | JTBC 뉴스
[왜 LCR제도를 폐지해서는 안될까?]
1) 박윤석, "해상풍력터빈 입찰 시 국산화비율 살핀다 : 남동발전, LCR 도입 추진… 올해 연말 세부기준 마련_국내 부품 공급망 구축… 해외업체 생산기지 유치 유도", Electric Power, 제14권 제9호, 32-33(2page), 2020.09
2) 배상훈, "[ZOOM UP_한국남동발전] 국산 해상풍력 활성화 선도 : 두중 창원공장서 상호협력 다짐_국내 최초로 LCR 제정해 도입", Electric Power, 제 15권 제8호, 56-56(1page), 2021.08
[외국의 자국 산업 보호 현황]
1) 장인철, “미 인플레감축법 시작에 불과... '공급망 보호무역' 극복해야", 한국일보, 2022. 09. 01,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90115330001714
2) 윤웅희, "EU의 핵심원자재법 살펴보기", Kotra 해외시장뉴스, 2023. 04. 06, https://dream.kotra.or.kr/kotranews/cms/news/actionKotraBoardDetail.do?SITE_NO=3&MENU_ID=410&CONTENTS_NO=1&bbsGbn=242&bbsSn=242&pNttSn=201552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옳다]
1) 장인철, “미 인플레감축법 시작에 불과... '공급망 보호무역' 극복해야", 한국일보, 2022. 09. 01,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90115330001714
2) 신대성, "[신년사] 한국수출입은행 2023년도 신년사", 뉴스워커, 2023. 01. 02, [신년사] 한국수출입은행 2023년도 신년사 - 뉴스워커 (newsworker.co.kr)
3) 양진영, "해외 풍력업계 “LCR 연계 가중치 사라지면 韓 풍력산업 망할 것”", 전기신문, 2023. 03. 25,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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