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결국 누구의 책임인가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6기 이서진
정부의 홍수 부실 대응을 지적하려 시위에 나온 스페인 시민들
지난 11월 9일,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주의 주도 발렌시아시에서는 약 13만 명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당신들(정부)이 우리를 죽였다” “책임자는 즉각 사임하라”고 외쳤다. 같은 날 수도 마드리드와 알리칸테 등 인근 도시에서도 정부의 자연재해 대응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의 분노는 지역 당국을 향했다. 지난 10월 29일 발생한 폭우로 인한 홍수에 부실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내린 폭우는 최근 유럽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힌다. 특히 발렌시아주에는 약 8시간 동안 1년 치 비가 쏟아지면서 가장 큰 피해가 났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 220명 중 212명이 발렌시아주에서 숨졌다.
시민들의 울분은 엄청났다. 시위가 끝날 무렵, 격분한 시위대 일부는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발렌시아 시청이 진흙으로 더럽혀진 모습이 담겼으며, 로이터 통신은 시위대가 의자와 기타 물건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또한, 11월 3일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인 파이포르타를 방문한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페드로 산체스 총리 역시 분노를 피하지 못했다. 시위대는 이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진흙과 여러 물건을 던졌다.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은 왜 비난의 화살을 당국에 돌렸을까. 재난의 발생은 불가역적일지라도, 그 이후의 단계는 인간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스페인 정부와 발렌시아주 주정부는 이번 재난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료 1. 당국의 부실 대응을 규탄하는 스페인 시민들]
출처: 경향신문
스페인 대홍수의 원인과 피해
이번 스페인 대홍수는 스페인 말라가, 발렌시아 등 남동부 지역에서 29일부터 사흘간 폭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했다. 스페인 기상청은 발렌시아에 8시간 동안 내린 비가 지난 20개월 강수량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최소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1973년 폭우 이래 스페인 최악의 홍수"라고 전했다. 폭우에 하천이 범람하면서 차량은 흙탕물에 떠내려갔고, 주택도 물에 잠겼다. 구조대는 헬리콥터와 고무보트를 동원해 주민들을 구조했다.
[자료 2. 발렌시아주 세다비의 홍수 피해 차량들]
출처: 한국일보
그러나 피해는 뼈아팠다.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 피해도 엄청났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강이나 하천이 범람하면서 급류에 떠밀린 실종자도 상당해 추가 희생자가 속출했다. 사망자는 220명에 육박했고, 3천 가구에 전기가 끊겼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폭우의 주된 원인으로 지중해의 따뜻한 바다로 찬 공기가 내려오는 ‘고타 프리아’를 지적했다. 스페인에서는 가을, 겨울에 발생하는 자연적인 기후 현상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구름이 더 많은 비를 머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소속으로, 지구 온난화가 이러한 자연재해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국제 과학자 집단을 이끄는 프리데리케 오토 박사는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해 조금만 더 기온이 높아져도 대기는 더 많은 수분을 머금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강우량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상 변화가 원인이 된 것이다.
정부의 미흡한 대응
문제는 발렌시아주 당국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점이다. 홍수가 내린 당일 일부 지역은 오후 6시쯤부터 침수가 시작돼 성인 허리 높이까지 빗물이 차올랐지만, 시민들은 오후 8시가 되어서야 재난 문자를 받았다. 기상청이 오전 7시 30분쯤부터 최고 단계인 폭우 ‘적색경보’를 내렸는데도 10시간 넘게 대피령이 발령되지 않은 탓에 주민들의 상황 파악이 지연되었다. 중앙 정부의 구조 인력 파견이 늦어지는 사이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진흙을 파내며 피해 복구에 나서야 했던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의 당일 행적도 시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마손 주지사는 당일 오후 유명 식당에서 기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고, 이날 소집된 비상 회의에는 오후 6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손 주지사는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중앙 정부가 홍수의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해 주지 않아 피해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스페인에서 재난 대응 1차 책임은 지방 정부에 있는 데다 홍수 발생 닷새 전부터 기상청이 호우 경보를 내렸는데도 주 당국이 아무런 경고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스페인에서는 지역 정부가 재난 대응을 담당하고 있지만, 필요할 시 마드리드의 중앙 정부에 추가 자원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인 기상청이 발렌시아 지역에 대해 10월 25일부터 폭풍 경고를 발령했음에도 발렌시아 당국은 홍수가 시작된 지 몇 시간 후에야 지역 주민들에게 휴대전화 경고 메시지를 발송했다. 실제로 비상 상황을 담당하는 지역 의원은 휴대전화 경고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인정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정황이 발렌시아 주 정부에 대한 비난에 힘을 더하고 있다.
또한, 문제는 주 정부가 지역 주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마손 주지사는 사건 발생 17일 만에 공식 사과를 전했다. 당국의 대처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지방 당국 수장으로서 "원조가 없었다거나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싶다"며 "나는 어떤 책임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주 정부는 재난 발생 시 즉각적인 대응에 가장 필요한 자원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파괴했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주민이 주 정부가 전하는 소식을 완전히 신뢰하고 공지를 순순히 따를지 알 수 없어졌다. 이처럼 한 번의 미흡한 대응은 현재의 암울한 피해는 물론, 미래의 위험 가능성까지 여파를 미친다.
재난의 최전선인 지방 정부가 지녀야 할 책임
이번 스페인 대홍수 사태는 재난 관리에서 지방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재난은 지역에서 발생하며, 그 피해는 가장 먼저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친다. 따라서 지방 정부는 재난의 최전선에서 이를 즉각적으로 마주하고 대응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이는 지방 정부가 국가 정부와 비교해 지역 사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렌시아 주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국가 정부에 돌리려는 태도를 보인 것은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국가 정부는 재난 관리의 큰 틀을 제공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방 정부가 재난 관리 시 따르는 프로토콜과 매뉴얼은 국가 정부가 공급하며 교육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 대응과 실질적인 실행은 지방 정부의 몫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초기 대응의 실패는 피해를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으며, 이는 지방 정부의 준비성과 책임감에 달려 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를 직접적으로 관리하고 대응해야 할 주체는 지방 정부이며, 이는 법적·윤리적으로도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지방 정부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재난 관리 체계와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번 대홍수 사태는 책임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 지방 정부가 중심이 되어 재난 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대홍수 사태로 피해를 입은 모든 희생을 마음 깊이 애도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간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우리는 기후변화에 속고 있을까?", 24기 이지혜, 25기 송현승, 이예영, 26기 이서진,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533
2. "지구 마감 4년 264일 전! 이제는 진짜 위기다", 25기 노정연,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623
참고문헌
정부의 홍수 부실 대응을 지적하려 시위에 나온 스페인 시민들
1) 이가영, “국왕은 진흙 맞고, 총리 차는 너덜너덜…최악 수해에 스페인 분노”, 조선일보, 2024. 11. 04.,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4/11/04/YCZQBD3LHJB5VJJ3BTLC6GZH7A/
2) 최혜린, ““정부가 우리를 죽였다” 대홍수 부실대응에 분노한 스페인 시민들”, 경향신문, 2024. 11. 10., https://www.khan.co.kr/article/202411101606001
스페인 대홍수의 원인과 피해
1) 김나연, “스페인서 51년 만에 최악의 홍수… '8시간 만에 20개월 치 폭우' 최소 158명 사망”, 한국일보, 2024. 10.3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3113400002443
2) 정지주, “스페인 폭우 사망자 100명 육박…국가애도기간 선포”, KBS뉴스, 2024. 10. 31.,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95176
3) 프란시스 마오&베서니 벨, “스페인 수십 년 만에 최악의 홍수 피해”, BBC뉴스 코리아, 2024. 10. 31.,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30pd9198zgo
정부의 미흡한 대응
1) “거리로 쏟아져나온 13만 명의 스페인 홍수 시위대”, BBC뉴스 코리아, 2024. 11. 10.,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d9nye9ed99o
'News > 기후변화-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침수 시리즈] 여름 장마보다 ‘가을장마’가 더 무섭다 (5) | 2025.01.27 |
---|---|
우리의 해산물 먹거리를 책임지는 양식장의 어두운 이면 (12) | 2025.01.27 |
[취재] 플라스틱 문제 타개를 위한 청년의 목소리 (2) | 2025.01.27 |
[취재] 허무하게 실패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마련 (1) | 2024.12.29 |
[Remake] 기후 위기와 불평등 : 책임과 피해의 불균형 (9) | 2024.1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