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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랄 촉매와 녹색 화학: 환경 오염은 줄이고, 필요한 물질만 쏙쏙 골라서

by R.E.F. 26기 김예은 2025. 4. 28.

카이랄 촉매와 녹색 화학: 환경 오염은 줄이고, 필요한 물질만 쏙쏙 골라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6기 김예은

 

녹색화학이란?

우리가 ‘화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 유해, 유독, 건강에 좋지 않음 등의 이미지일 것이다. 화학조미료, 화학물질처럼 ‘화학’이라는 단어가 끼는 순간 환경에 유해하고, 인체에 해롭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화학 공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화학 물질들은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살충제 DDT,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사건과 다이옥신에 의한 토양 오염, 냉매로 사용되는 CFC 등에 의한 오존층 파괴 등 화학물질에 의한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학을 포기하기에 인류는 이미 화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들이 화학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편리함을 위해서 지구와 환경을 죽이는 것이 옳을까? 그렇지 않다. 현재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가능하다면 화학이 주는 편리함은 취하고, 오염은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이러한 화학 공정에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이 바로 ‘녹색 화학’이다. 녹색 화학은 화학 공정에서 유해한 화학 연료, 시약, 용매 등의 화학 제품의 사용을 줄이거나 유해 물질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기술을 말한다.

1998년 폴 아나스타스와 존 워너가 제시한 녹색 화학의 제12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폐기물은 만들어지고 나서 처리하기보다, 발생을 막아야 한다.

② 사용하는 모든 원료가 전부 최종 생성물에 들어가도록 합성 방법을 개발한다.

③ 사람의 건강과 환경에 덜 해로운 물질을 사용하고, 제조하도록 합성법을 개발한다.

④ 물질의 기능은 유지하되, 독성이 적은 물질을 개발한다.

⑤ 용매 등 보조 물질은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고, 사용 시 무해한 것으로 사용한다.

⑥ 가능하다면 물질 합성은 실온과 대기압에서 진행해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

⑦ 기술적,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항상 재생가능한 원료를 사용한다.

⑧ 합성 과정에서 불필요한 유도체와 과정은 피하거나 최소화한다.

⑨ 화학 양론적 시약보다는 가능한 한 선택적 촉매를 사용한다.

⑩ 화학물질은 기능을 다한 후에는 무해한 물질로 분해되는 것으로 고안한다.

⑪ 실시간으로 화학 공정을 감시하고, 유해 물질의 생성을 통제할 수 있는 분석법을 개발해야 한다.

⑫ 화학 공정에서 사용되는 물질은 여러 사고 가능성이 최소화되도록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녹색 화학은 화학 공정에서 발생한 유해 물질의 후처리보다는 화학 공정 자체에서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고, 에너지 효율이 높도록 설계하는 것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환경화학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녹색 화학을 활용한 예시로는 흔히 아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복분해 반응 등이 있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카이랄(Chiral) 합성을 통한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카이랄(Chiral)이란?

카이랄 합성이 녹색 화학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카이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카이랄(Chiral)은 ‘손’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cheir’에서 유래한 단어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겹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화합물이 분자식과 결합 방식, 결합순서는 동일하지만 원소들의 공간 배열의 차이 때문에 서로 완전히 겹치지 않는 거울상을 가질 때 이러한 분자구조를 카이랄성(Chirality)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카이랄성을 가지는 물질들을 거울상 이성질체, 혹은 광학 이성질체라고 한다.

[자료 1. 거울상 이성질체]

출처: 네이버블로그

다소 생소한 개념이므로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나 위의 그림을 참고하면 이해가 쉽다. 위 그림에서 분자는 언뜻 보면 같은 물질로 보이지만 겹치려고 하면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다. 이 같은 물질들을 바로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울상 이성질체는 동일한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평면 평광(plane-polarized light)의 회전 방향은 반대이다. 이 성질을 이용해서 거울상 이성질체를 구분하는데, 평면 편광을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키면 (+)- 또는 d-거울상 이성질체,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시키면 (-)-, 또는 l-거울상 이성질체로 나타낸다. 또는 우선도(Priority)를 통해 우선도가 낮아지는 방향이 시계방향이면 R, 우선도가 낮아지는 방향이 반시계 방향이면 S로 구분하기도 한다.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같으면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인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화학반응들은 대부분 효소(enzyme)와 보조인자(cofactor)등의 촉매 반응으로 일어난다. 이때 효소들은 각각 특별한 결합 부위를 가지고 있는데, 이때 분자의 입체 구조를 인식해 반응이 일어난다. 따라서 거울상 이성질체처럼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동일한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입체 구조가 다르다면 인체에서 전혀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단순히 약물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약인줄 알고 먹었는데 효과가 없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부작용 혹은 아주 끔찍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자료 2. 탈리도마이드 분자 구조]

출처: wikipedia

예시로, '탈리도마이드'라는 물질이 있다. 이 물질은 독일의 제약사인 그뤼넨탈에서 개발되어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강력하고 안전한 진정제, 수면제로 판매됐다. 특히 광고에서 '무독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입덧 완화에 효과가 있어 많은 임산부들이 이 약품을 복용했다. 하지만 이 의약품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R형 탈리도마이드는 입덧 및 구토 억제와 같은 긍정적 작용을 가지지만, S형은 혈관신생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갖고 있던 것이다. 임신 상태에서 이 약을 복용할 경우 태아에게 영향을 미쳐 사지가 짧거나 없는 채로 태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제약학계는 카이랄성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관리하고 있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같아 보이는 물질이지만 인체 내부에서 반응할 때 전혀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카이랄성 물질을 사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의약품 합성 과정에서는 대부분 양쪽 카이랄성 화합물이 동시에 만들어지는데, 이때 약효가 있는 성분만을 분리해서 사용해야 한다.

 

카이랄 합성의 사례

그러나 유용한 이성질체만 선택해서 합성하는 방법은 어려운 문제에 해당한다. 분자식도 완전히 동일하고 물리적 화학적 성질도 같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합성했을 경우 두 물질이 섞여서 나온다. 이러한 카이랄성을 제어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카이랄 촉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카이랄 합성은 원하는 카이랄성 화합물만을 합성하는 방법인데 여기서 카이랄 촉매가 사용된다. 카이랄 촉매를 사용하면 분리 후 순수화하는 작업을 거치는 것보다 효율이 뛰어나고 원하는 쪽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필요한 성분만을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폐기물 발생량도 적어지고 값싸게 반응을 진행할 수 있어 녹색 화학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샤플리스 교수는 선택적 산화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카랄성 촉매를 개발해 궤양과 고혈압 등에 작용하는 의약품 생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분자 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장석복 단장과 박윤수 연구원이 2개의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한 종류의 분자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고, 이를 이용해 탄화수소화합물을 의약품에 들어가는 재료인 카이랄 락탐으로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박진균 부산대 화학과 교수는 카이랄 리간드를 합성할 수 있는 새로운 카이랄성 촉매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독감 치료제로 유명한 타미플루 또한 카이랄성 촉매를 활용한 예시이다.

 

카이랄 합성과 녹색 화학이 나아갈 미래

카이랄 합성은 이처럼 의약품 생산에 있어 꼭 필요한 기술일 뿐만 아니라 선택적 합성을 통해 폐기물을 줄이고 꼭 필요한 화합물만을 합성해냄으로써 녹색화학으로써 작용한다는 의의를 갖고 있다. 화학 물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녹색 화학은 환경 오염을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미래에는 더욱 효율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카이랄 촉매가 개발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의약품 개발, 친환경 플라스틱 생산, 기존 공정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촉매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인류가 화학의 이로움을 누리면서도 환경을 고려하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앞으로 카이랄 촉매 개발과 응용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보다 안전한 의약품과 환경 친화적인 화학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삶의 질을 높이고, 환경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의약품 중 약 60% 이상이 카이랄 의약품이다. 이러한 의약품을 사용하고 생산하는 데 있어서 카이랄 촉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부작용 없고 환경 오염을 끼치지 않는 의약품을 제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녹색 화학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리그닌 : 나를 골칫거리로 보지 마세요", 20기 서범석, 22기 정의희, 22기 홍세은,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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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녹색화학이란?]

1) 박준우, 네이버지식백과, "화학산책", 2010.01.07,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8494&cid=58949&categoryId=58983

[카이랄(Chiral)이란?]

1) 한서영, “거울상 이성질체를 아시나요? 카이랄 의약품의 두 얼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블로그, 2020.05.11, https://m.blog.naver.com/with_msip/221956507669

2) wikipedia, "탈리도마드",  https://ko.wikipedia.org/wiki/%ED%83%88%EB%A6%AC%EB%8F%84%EB%A7%88%EC%9D%B4%EB%93%9C

[카이랄 합성의 사례]

1) 강석기, "[강석기의 과학카페] 거울 나라는 현실이 될까", 동아사이언스, 2022.11.15,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7118

2) 문광주, "마법의 분자 유기 촉매 (2) "비대칭 유기 촉매는 무엇인가"", thescienceplus, 2022.07.24, https://m.thescienceplus.com/news/newsview.php?ncode=1065579991752768

3) 한화토탈에너지스, "화학의 꽃, 촉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한화토탈에너지스 블로그, 2021.12.14, https://blog.naver.com/hanwha_total/2237745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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